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성칙(聖則), 호는 신암(愼庵). 아버지는 첨지중추(僉知中樞) 하계해(河啓海)이며, 어머니는 연안차씨(延安車氏)로 차재태(車載泰)의 딸이다.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다음 해 성균관학유에 임명되었고, 박사·전적을 거쳐 예조정랑에 올랐으며, 1825년 사헌부지평으로 승진하였다.
관직에 있는 동안 상소로써 국정을 논하여 성지(聖志)를 가다듬어 성학(聖學)에 근면할 것, 기강을 진작하여 조정을 바로잡을 것, 의로운 것을 일으켜 해로운 것을 제거할 것, 인재를 수용하여 정무를 처리할 것, 신(信)으로써 상벌을 분명히 할 것, 용도를 절약하여 백성을 사랑할 것 등을 진언하였다. 저서로 『신암유고(愼庵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