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0년(선조 33)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박번(朴蕃) · 박훈(朴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청웅면 구고리 남쪽 아구정(迓鷗亭)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1621년(광해군 13)에 아구정 북쪽 주천동(酒泉洞)으로 이건, 김천일(金千鎰)을 주벽으로 모시고 홍붕(洪鵬)을 추가 배향하여 서원의 규모를 갖추어 30여 년 유지해 오던 중 화재를 당하였다.
1656년(효종 7)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짓고 ‘하정서원’이라는 사액을 예조에 청원하였으나 같은 해 김천일의 원호(院號)가 다른 곳에 사액되어 중복할 수 없으므로 사액서원의 예로 향사토록 하고 관제물 물목(官祭物物目)을 봉하여 현감 제주(縣監祭主)로 향사하라는 하교가 내려졌다.
같은 해에 이흥발(李興勃), 1659년에 조평(趙平), 1855년(철종 6)에 김원근(金元根)을 각가 추가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유림에 의하여 위패를 그 유허지에 매안(埋安)하고 제단을 마련하여 매년 음력 3월 3일에 향사를 유지해왔다.
1995년 지방지치단체의 지원으로 군비보조와 유림 및 후손들에 의하여 일차적으로 사우 3칸, 내삼문 3칸이 복원되었다. 제품(祭品)은 4변(籩)의 4두(豆)이다. 유물로는 원지(院誌) 3책 등 30여 권의 문헌이 전해오고 있으며, 재산으로는 전답 445평, 임야 1,100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