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서원(西原). 자는 원길(元吉), 호는 수암(睡庵) 또는 두정(斗亭). 아버지는 사간 한옹(韓顒)이며, 어머니는 온양정씨(溫陽鄭氏)로 정숙(鄭琡)의 딸이다. 큰아버지인 현감 한현(韓顯)에게 입양되었다.
1611년(광해군 3)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업을 닦았다. 1617년 〈태학연명소(太學聯名疏)〉를 올려 폐모론을 주창하던 이위경(李偉卿)·정조(鄭造)·윤인(尹訒) 등을 탄핵하고 폐모의 옳지 않음을 주장하다가 광해군에게 미움을 사서 종신 금고의 처분을 받고 도성에서 축출되었다.
그 뒤 향리로 돌아가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에 정릉참봉(靖陵參奉)과 금오랑(金吾郎)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저서로는 『수암유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