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씨보응록」은 1918년 구활자본으로 출판된 이해조의 역사소설이다. 한씨 시조의 이야기로부터 한명회의 일대기로 이어지는 상·하 10회씩 총 20회의 장회 소설이다. 한명회 전기를 미화하고 여러 민담을 변용하였다. 12회는 70회본 「수호지」 37회와 줄거리가 같고 16회는 「수호지」 21회와 흡사하다. 이해조가 창작한 「한씨보응록」과 「홍장군전」은 일정 부분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20세기 초 「수호지」의 영향을 받은 사례이며, 이해조가 신소설 작가로 분류되지만 고전소설 작법으로도 창작했음을 보여준다.
1권 1책. 활자본. 한명회(韓明澮)의 전기를 미화하여 여러 민담에 연결시켜 지은 역사소설이다.
고려 태조 창업 초에 청주 오송리에 사는 송씨 성을 가진 한 처녀가 아버지를 여의고 중풍을 앓는 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하며, 부엌에 나타난 두꺼비에게 밥을 주어 키우다 보니 어언간 7~8년이 되었다.
송 처녀가 살고 있는 오송리에는 천 년 묵은 지네가 있었다. 1년에 한 번씩 지네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동제(洞祭)를 지내지 않으면, 흉년이 들고 질병으로 마을 사람들이 무수히 죽는 괴변이 일어난다. 이 해에도 제물로 바칠 처녀를 구한다는 소문을 들은 송 처녀는 병든 어머니의 생전 의식과 사후 주1를 위하여 전답을 마련하기로 결심하고, 천금을 받고 자신의 몸을 팔아 제물이 되어 오송굴로 들어갔다.
밤중이 되어 지네가 나타나 송 처녀를 잡아먹으려 하자, 그녀가 밥을 주어 길렀던 두꺼비가 나타나 지네와 싸운다. 그러다가 두꺼비와 지네 둘 다 죽게 된다. 이때 송 처녀는 그 광경을 보다가 기절한다. 날이 새어 송장을 치우기 위하여 지네굴에 들어갔던 이 진사의 머슴 한란(韓蘭)이 기절한 송 처녀를 업고 집으로 돌아와 소생시키고, 한란은 송 처녀와 혼인하여 행복하게 살아간다.
한생(한란)이 고려 태조를 도와 개국공신이 되자, 한씨 문중이 크게 번성하게 되고 8세손 한악(韓渥)은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이 된다. 부원군의 현손 한상질(韓尙質)은 조선 태조의 공신으로 문열공(文烈公)이 되니, 이 모두가 한 · 송 부부의 보응이었다. 문열공의 장자 한계명(韓繼明)이 일대의 영웅 한명회를 낳으니, 이 또한 시조모의 보응이다.
한명회는 15세가 되는 해에 세종대왕의 충신 중추부사 민대생(閔大生)의 딸과 약혼하고, 안동부사가 된 증조부를 따라 안동으로 간다. 한명회는 안동에서 사냥을 갔다가 산적의 여자를 만나 그녀와 정을 통한다. 산적 오운림(吳雲林)은 한 생의 담대한 행동에 감동하고, 한명회는 산적에게 수표를 써 주고 돌아온다.
한명회는 권람(權擥)을 통하여 수양대군(首陽大君)과 사귀고, 수양대군이 등극하는 데 지극한 공을 세우고 이조판서가 된다. 그 뒤 한명회는 영의정에 올라 부귀와 공명을 일세에 누리게 된다.
이 작품은 한명회의 인물 설화와 일반 설화를 활용했고, 중국 소설 「수호지」의 내용을 각색해서 이야기를 구성하였다. 1910년대 구활자본 출판 시장은 대중 독자들에게 새로운 원고를 제공하기 위해 기존 소설·설화·야담, 그리고 중국 소설에서 화소를 따와서 한 편의 소설을 편집하는 방법을 썼다. 「홍장군전」에 실린 광고에서 이해조가 「홍장군전」과 「한씨보응록」을 ‘특별편집’했다고 하였다. 「홍장군전」에서 홍윤성을 「수호지」 호걸로 연결될 수 있게 서술한 것처럼, 한명회는 「수호지」의 인물과 관련성이 없으나 「한씨보응록」에서 「홍장군전」을 그대로 이어서 한명회까지 호걸로 적극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곧 「한씨보응록」은 「홍장군전」의 성립을 계기로 「수호지」의 영향을 받고 실존 인물 한명회를 「수호지」의 영웅호걸로 개조하면서, 전승되어 오던 다양한 설화·야담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그 결과 「한씨보응록」의 서사는 시정의 지식 및 교양으로 기능했지만, 그 수준이 매우 통속적인 흥미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