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부의 지도는 건국 초부터 제작되었으며, 그 명칭은 20여 종류나 된다.
즉, 「경도도」·「경조도」·「경성도」·「한양도」·「한성도」·「한성부도」·「한경도」·「도성도」·「한양전도」·「한성전도」·「경조오부도」·「수선전도」·「조선장안도」·「한양경성도」·「도성대지도」·「도성3군문분계지도」·「한양성시전도」·「성시전도」·「사산금표도」 등이다.
제작 방법은 초기에는 약식(略式), 중기에는 회화식(繪畫式), 후기에는 방안식(方眼式)으로 제작하였다. 산악평면도법(山岳平面圖法)·백리척법(百里尺法)·삼각측량법(三角測量法)·기리고차법(記里鼓車法) 등을 응용하여 서운관(書雲觀)과 도화서(圖畫署)에서 제작하였다.
지도의 내용이 되는 서울의 범위는 도성 안의 문안과 교외 지역인 근교와 원교를 다 그린 것도 있고, 성저10리(城底十里)까지만 그린 것도 있다.
도성 안에는 궁(宮)·각(閣)·단(壇)·묘(廟)·당(堂)·고(庫)·청(廳)·창(倉)·문(門)·전(殿)·천(川)·교(橋) 등을 그리고, 부(部)·방(坊)·동(洞)·계(契) 등의 명칭을 기입하였다. 지도의 종류는 필사본과 목판본으로 구별할 수 있다.
필사본은 지본수묵본·지본채색본, 목판본은 지본수묵본·지본수묵담채본으로 나누어진다. 또, 같은 지도라 하여도 원본·모사본·번각본 등이 있고, 필사본과 목판본이 함께 있는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 한양도가 많이 제작된 것은 중기, 특히 숙종·영조·정조시대였다. 지금 남아 있는 서울 고지도의 대부분은 이 무렵에 제작된 것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된 것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한양도 가운데 가장 큰 것은 188×215㎝나 되고, 작은 것은 20×28㎝ 정도이다. 표구 방법은 병풍식·절첩식·족자식·서책식 등이 있어 다양하다.
지금까지 조사, 확인된 서울 고지도 70여 폭 가운데 제작 연대가 밝혀진 것은 「경성전도(京城全圖)」(1907년)·「사산금표도(四山禁標圖)」(1765년)·「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1861년) 등 몇 폭밖에 없다.
기타 지도의 제작 연대는 지도의 규모·재질·제작 방법·행정 단위·명소의 유무와 위치 등을 관찰한 뒤 추정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