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전라남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영모당은 1687년(숙종 13)에 건립된 해남윤씨(海南尹氏) 문중제각으로 윤광전 · 윤단봉 · 윤단학 부자를 제향하고 있다. 이곳에 영모당이 건립된 배경은 한천처사(寒泉處士) 유익(唯益)이 이곳에 은거함에서 비롯되었다. 유익은 어초은(魚樵隱) 윤효정(尹孝貞)의 증손이자 행당(杏堂) 윤복(尹復)의 손자로서 그의 형인 윤유겸(尹唯謙)과 함께 성균관 유생으로 학문을 연마하였다. 그러던 중 형이 이이첨(李爾瞻)의 폐비상소에 가담하자 이를 만류하였다. 형이 이를 듣지 않자 강진 한천동에서 은둔하던 중 우연히 개간 중에 선대의 묘전지석(墓前誌石)을 발견하였고, 이로써 윤광전과 두아들 윤원봉 · 윤원학 3부자의 묘를 찾게 되었다. 윤광전은 해남윤씨 시조인 윤존부의 8세손으로서 해남 녹우당에 보존되어 있으며 1968년 보물로 지정된 「윤단학 노비허여문기 및 입안」(1354년, 恭愍王 3)을 작성하였던 인물이다. 이를 계기로 유익을 중심으로 한 이 곳 해남 윤씨들은 묘소를 새롭게 단장하였으며, 1687년에는 묘역에 영모당을 창건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윤광전 · 윤단봉 · 윤단학 3부자를 제향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영모당은 창건당시 5칸의 제각(祭閣)과 제직사(祭直舍) · 대문(大門) · 자손유숙실(子孫留宿室) 등을 축조하였고 1812년(순조 12)에는 일부를 보수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70년대 초에 일부 보수된 것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된 영모당과 ㄷ자형 구조로 된 총 34칸 규모의 큰 행각으로 된 행랑채, 그리고 2동(棟) 모두 같은 규모로 된 우진각집으로 된 우사 등이 있다.
이 영모당은 건립된 후 지금까지 원형이 잘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여러 구조물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개의 건물 규모도 상당히 크며 실의 구조와 배치도 합리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 특히 내부를 모두 강당대청 형식으로 꾸민 것은 다른 지방의 제각과 구별되어지는 요소이다.
본 건물은 다른 지방의 어떠한 제각 건축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전라남도지역 제각건축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