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학(海洋學, Oceanography)은 지질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 그리고 이들 각 분야의 학문을 바다와 그 주위에 적용할 공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분야를 포함한다. 해양학의 세부학문으로는 해양지질학(海洋地質學), 물리해양학(物理海洋學), 해양생물학(海洋生物學), 화학해양학(化學海洋學), 해양공학(海洋工學) 등이 있다.
해양지질학은 지구 내부의 성분, 지각의 변동, 해저퇴적물의 특성, 고기후에 대한 연구를 한다. 해양지질학은 순수 학문분야를 넘어 지진예측이나 지하자원의 분포를 분석하는 실용적인 학문에도 영향을 주는 학문분야이다.
물리해양학은 파랑역학, 해류, 해양-대기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분야이다. 최근 물리해양학은 공해로 인한 기후 변화에 대한 예측이 중요해짐에 따라 학문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해양생물학은 해양생물의 분포와 특성, 해양-대기의 상관관계로 인한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며, 해양생물로부터 유용한 물질을 얻기 위해 연구하는 분야이다. 화학해양학은 해양의 용존 고체 및 기체와 이들 성분이 해양에 미치는 지질학적·생물학적 관련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해양공학은 석유플랫폼, 선박, 항만 등 해양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 구조물의 건조·설계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또 항해의 안전성 제고에 대한 연구가 이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해양학의 역사는 지중해시대(地中海時代, 14세기), 대서양시대(大西洋時代, 1519세기), 전대양시대(全大洋時代, 20세기 이후)로 크게 나뉜다. 지중해시대에는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Thales)가 물을 만물의 기본요소 중 하나로 여기면서 해양의 역사가 시작되었다(서기전 546).
이후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바다를 철학적으로 연구하였고(서기전 322), 프톨레마이오스(Ptolemy)의 지도첩(150년)과 1154년 알이드리시(Idrisi)의 지도첩으로 해양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서양시대에는 엔리케 왕자(Navegador Henrique)가 사그레스(Sagres, 포르투갈 남부)에 항해 및 해양과학 센터를 설립하여 바다로 출항하는 사람들을 교육시켰고, 돌아오는 배로부터 얻어진 정보로 해안선 지도도 수정하였으며, 항해용 선박을 만들기도 했다.
특히 지리적 발견의 시대로 콜럼버스(Columbus)의 신대륙 발견(1492년),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의 인도항로 개척(1498년), 마젤란(Magellan)의 세계 일주(1519~1522년)가 있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지리학자 메르카토르(Mercator)는 항해용 해도 도법(圖法)을 확립하였다.
이 외에도 1659년에는 헤리슨(Herrison)이 크로노미터(Chronometer)를 발명하여 선상에서 경도 측정이 용이해졌다. 제임스 쿡(James Cook), 라 페루즈(La Perouse), 크루젠슈테른(Krusenstern)은 각각 세계 일주를 겸한 탐사항해와 과학조사를 병행하였다.
전대양시대는 19세기 중반 이후 본격적인 학문으로 해양학을 연구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 시기는 바다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고조되었다. 역사적 주요 사건을 살펴보면, 1843년에 포베르스(Forbers)가 300패덤(540m) 심해에서도 생물이 살 수 있다는 가설을 발표함으로써 해양학 연구의 자극제가 되었다.
1855년에는 마우리(Maury)가 『Physical Geography of the Sea』를 출판하여 바다의 지리학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1872~1876년에는 챌린저(Challenger)호의 해양탐사가 있었고, 이 탐사를 바탕으로 총 50권에 이르는 보고서가 간행되었다.
1957~1958년에 수행된 국제공동연구사업인 국제지구물리관측년도(IGY, International Geophysical Year) 해양조사로 인해 해양의 국제협력시대가 개막되었다. 1960년에 국제해양학연구회의(코펜하겐)가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개최되었으며, 이는 1961년에 개최된 정부간 해양학위원회(IOC, Intergovernmental Oceanographic Commission) 제1회 회의(파리)로 발전하였다.
1960∼1965년 국제인도양조사(IIOE, International Indian Ocean Expedition)가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며, 1965년부터 국제구로시오공동조사가 실시되었다. 그리고 국제열대대서양공동조사(ICITA)가 1963년에 실시되었으며, 1962~1970년 기간 동안 동태평양공동관측(EPOC)이 실시되었다.
1978년에는 해양자료를 수집하는 미국의 자원 탐사 위성인 시샛(Seasat)의 발사로 인공위성을 이용한 해양학 연구시대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UN해양법협약이 발효됨으로써 각 연안국별로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 Exclusive Economic Zone)이 설정되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인공위성 자료를 활용하여 해양환경을 보전하고 해양자원을 관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해양학 역사는 라 페루즈(La Pérouse)가 1787년에 한국 근해(남·동해) 해양조사를 위해 탐사·항해를 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915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정규적인 관측이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히 1966년 한국해양학회(韓國海洋學會)가 설립되어 해양학 연구가 활성화되었다.
우리나라 해양학 발달의 주요 역사적 사건을 살펴보면, 1797년에 브로튼(Broughton)이 남·동해를 탐사했고, 1816년에 맥스웰(Maxwell)과 홀(Hall)이 황해 중부의 수온조사와 서해안을 탐사하였으며, 1845년에 벨처(Belcher)가 제주도와 거문도 해역을 조사하였다.
1884년에 해양의 연간 간이기상조사를 인천과 원산에서 시작했고, 1904년에는 연안 정규기상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1936년에는 『조선해양편람』과 『조선근해평년해황도』가 발행되었다. 국제적인 해양조사인 국제구로시오공동조사에 1965년부터 1970년까지 참여하여 한국의 해양학 연구 발전에 기여하였다.
1966년 한국해양학회 설립 이후 1968년에는 일반대학교에서 해양학과가 설립되어 해양학 연구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1990년에는 미국 해양대기청(NOAA,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의 지상수신국으로 운용됨으로써 실시간 데이터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韓國海洋科學技術員, KIOST)이 대표적인 해양연구기관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1973년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부설로 해양개발연구소(海洋開發硏究所)가 설립된 것이 시초이다. 이후 1988년에 남극세종기지가 준공되었고, 1990년에 재단법인 한국해양연구소(韓國海洋硏究所)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2012년에 한국해양과학기술원(韓國海洋科學技術員)으로 출범하였다.
주요 연구 및 기능으로 해양과학기술 및 해양산업 발전에 필요한 원천 연구, 응용 및 실용화 연구, 해양 및 극지과학기술 정책·제도 연구, 해양분야 우수 전문인력 양성 및 대국민 서비스, 해양 관련 기기·장비기술개발과 검·교정, 해양과학기지 등 해양인프라 구축 및 운영, 국내 및 국외 대학 연구기관·산업체 등과 수탁·위탁 공동연구 및 기술제휴 등을 수행해 오고 있다. 이 외에 한국해양수산개발원(韓國海洋水産開發院)에서도 해운항만 및 해양환경 등에 대한 해양정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해양학 분야의 주된 연구는 기초적인 해양정책 수립, 해양자원의 개발과 이용에서부터 해양자원·해양에너지를 이용한 신산업 육성, 해양생태계 보전 및 관리, 해양관광 진흥을 위한 정책 마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독도, 이어도 등 해양영유권 확립과 보호를 위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