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남 평양 출신. 대한제국기에 하와이로 이민한 후 분열된 하와이 한인사회의 통합, 임시정부와 김구 주석의 특무공작 후원 등 평생 하와이 교민사회의 단결과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일찍이 하와이로 이민하여 1907년 9월 성공회(聖公會) 교인들과 대한제국 부흥운동과 교육장려를 위해 전흥협회(電興協會)를 조직하였다. 1910년 4월 전흥협회가 미주 최고통일기관인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로 통합되자,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 10월 이승만 계열과 박용만 계열로 분열된 하와이 한인단체를 통일하고 최고의 독립운동기관을 설치하기 위해 기성회가 조직되자, 하와이 대조선국민대표 기성회 총무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0년대 후반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로부터 임시정부의 재정부족을 호소하는 편지를 받자, 임시정부 재정 후원을 위해 자금 모집에 앞장섰다.
1933년 1월 하와이 대한인교민단(大韓人僑民團)을 해체하고 하와이 대한인국민회를 다시 설립하는 등 미주와 하와이의 대한인국민회와 보조를 같이하여 독립운동 후원사업을 전개하였다. 1934년 4월 김구의 특무공작을 후원하기 위해 애국단(愛國團)에 가입하였으며,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이 결성되자 1940년 5월 애국단의 명칭을 변경하여 한국독립당 하와이지부를 설립하였다. 1936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으로 선임되자 국민부담금제도를 실시하여 국민회의 채무를 청산하고, 호상부제도를 실시하는 등 단체를 획기적으로 부흥 발전시켰다.
1941년 4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가 결성되자, 1942년 3월 연합위원회 의사부 위원 자격으로 미국 워싱턴에 특파되어 미주 각지 재류 동포와 워싱턴 외교위원회를 방문하여 하와이 동포의 전시중 정형에 대해 협의하는 등 교민사회의 단결과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공로로 199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