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하와이 한인사회 통합과 단결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하는 등 조국의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1910년대 미주지역 최고통일기관인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하와이지방총회 와히아와(Wahiawa) 본동 대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15년 이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가 이승만(李承晩)과 박용만(朴容萬) 계열로 분열되자, 오아후(Oahu)섬의 지방회원들과 특별대의회 소집 청원서를 제출하여 하와이 한인사회의 단결을 촉구하였다.
1931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부 하와이 제1행서(第一行署) 재무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를 후원하였다. 1932년 1월 하와이 대한인교민단 부단장, 8월 하와이 대한인교민단 총단장으로 선임되자, 대한인교민단을 해체하고 하와이 대한인국민회를 다시 설립하였다. 이는 이승만 계열의 동지회(同志會)가 하와이 한인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을 종식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1933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으로 선출되자 『국민보(國民報)』를 발행하는 한편, 한인사회 결집, 동포의 안녕, 민족교육 장려에 힘쓰면서 민족운동을 전개하는 등 하와이 국민회를 선도하였다.
1934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상임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재차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부 주미(駐美) 제1행서 재무위원으로 선출되자, 미주 한인사회의 단결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정후원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공로로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