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사회에서 ‘합방(合邦)’을 반대한 것은 1909년 2월 19일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에서 시작되었다. 하와이지방총회는 이완용과 송병준에게 전보를 보내 경고하는 한편, 24일에는 일본 천황에게 ‘합방’계획 철회를 요구하였다.
1910년 7월 3일과 5일, 대한인국민회 산하 북미지방총회와 하와이지방총회는 각기 새크라멘토와 호놀룰루에서 임시공동대회를 개최하고, 애국동맹단(愛國同盟團)과 대동공진단(大同共進團)를 조직하였다. 애국동맹단과 대동공진단은 한국에 연락통신 비밀기관 설치, 고종과 일본천황에게 ‘합방’반대 전보 발송, 미국 등 9개국에 ‘합방’반대 외교 활동, 군인양성운동 전개 등을 목표로 삼았다. 특히 외교와 선전사업은 애국동맹단이, 군인양성운동은 대동공진단이 전담하기로 하였다.
이 결정에 따라 애국동맹단과 대동공진단은 6일 순종(純宗)을 비롯한 일본천황과 통감에게 데라우치(寺內正毅)에게 각각 전보를 보내 ‘합방’ 거절과 취소를 촉구하였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각 신문과 구미 각국에 영문 선언서를 발송하여 일제의 한국강점을 비판하는 한편, 미주·하와이·멕시코·만주·러시아 등 해외 한인이 산재한 곳으로 결의문을 배포하여 애국동맹단 활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이와 더불어 만주와 러시아 등 원동지역(遠東地域)에서 독립전쟁을 전개할 사관생도 양성을 결의하였다. 애국동맹단과 대동공진단은 군인양성을 위해 무예장려문을 발표하여 미주 한인들의 무예정신을 고취하는 한편, 『체조요지(體操要旨)』를 출판·분급(分給)하고 청년들의 군사훈련을 장려하였다.
경술국치 반대운동을 시작으로 하와이에서는 1910년 7월 군인양성소를 설립하였고, 북미에서는 10월 클레어몬트를 비롯한 롬폭, 와이요밍 등지에 군인양성소가 설립되어 군인양성운동을 실시하였다. 특히 11월에는 대동공진단이 하와이지방총회로 군인양성소를 이관하자, 하와이지방총회는 연무부(鍊武部)를 조직하여 체계적인 독립군 양성운동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