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금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교서교감, 예의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재중(在中)
야당(埜堂)
시호
문정(文定)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340년(충혜왕 복위 1)
사망 연도
1388년(우왕 14)
본관
공암(孔巖, 지금의 서울 양천구)
주요 관직
예의정랑(禮儀正?)
정의
고려 후기에, 교서교감, 예의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공암(孔巖: 지금의 서울 양천구). 자는 재중(在中), 호는 야당(埜堂). 양천군(陽川君) 허백(許伯)의 손자이며, 지신사(知申事)를 지낸 허경(許絅)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죽산박씨(竹山朴氏)로 박원(朴遠)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57년(공민왕 6) 당시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인복(李仁復)의 문하에서 급제하여 교서교감(敎書校勘)에 제수되었으며,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예의정랑(禮儀正郎)이 되었다. 우왕을 옹립하는 데 반대하였으며, 윤소종(尹紹宗)·조인옥(趙仁沃)·조준(趙浚) 등 뒷날 조선왕조 개국의 주역들과 친교가 있었다.

성품이 조용하며 권력에 아부하지 않았고 불교를 좋아하지 않았다. 은퇴한 뒤에는 사재를 털어 약을 사서 귀천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구호하였다. 50살이 못 되어 죽으니 사림(士林)이 크게 애석해하였다고 한다.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집필자
신천식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