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돈 ()

창주집
창주집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성균관박사, 예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덕휘(德輝)
창주(滄洲)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86년(선조 19)
사망 연도
1632년(인조 10)
본관
김해(金海)
주요 관직
예조정랑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박사, 예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덕휘(德輝), 호는 창주(滄洲). 허순(許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허팽령(許彭岭)이고, 아버지는 찰방 허홍재(許洪材)이며,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윤언례(尹彦禮)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처음 노흠(盧欽)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이흘(李屹)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6년(광해군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학유에 임명된 뒤 성균관박사를 거쳐 예조정랑을 역임하였다.

그 때 폐모설이 나오자 인륜의 기강이 무너졌다고 크게 한탄하면서 관직에서 물러나 와림천(臥林泉)에서 부모를 봉양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1623년(인조 1)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즉위하여 전라도사에 임명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1627년 남한산성에서 강화조약이 이루어지자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였으며, 또 친구 임진부(林眞怤)에게 준 시 300구절에서는 모두 시대를 한탄하고 나라를 걱정하였다. 고암서원(古巖書院)에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창주집』이 있다.

참고문헌

『효종실록(孝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