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8월 16일에 보부상들은 통리기무아문에 연명으로 외국에서는 상국 · 상사 · 상회 등을 정부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정부 관할 아래 새로이 자신들의 명의로 상국(商局)을 설립하여 상권을 침해받지 않도록 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적극적 관심을 보인 좌의정 김병국은 8월 19일에 고종에게 '혜상공국'이라는 상업기구 설립을 건의하였다.
고종은 이를 받아들였고, 병조에 하교하여 혜상공국 관방(關防)을 조성하여 줄 것을 지시하는 한편 친군영(親軍營)으로 하여금 부상(負商)인 좌상과 보상(褓商)인 우상의 감독을 맡게 하였다. 또 규식을 정하고 종2품 이상으로 관리를 제수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준비 작업을 거쳐 그해 10월 절목을 발표하였다.
중앙기구에 구관당상, 공사당상 각 1명과 총판 4명, 좌우 통령 2명을 두어 전국의 사무를 총괄하게 하였다. 지방에는 각 도에 감무관, 도반수, 도접장, 방판을 1~2명씩 두고, 각 읍에는 반수, 접장 이하 임원을 두었다. 전직 관리를 감무관으로, 방판은 수령으로 겸임하게 하는 한편 도접장 이하 각읍 반수, 접장, 소임은 보부상으로 임명하였다.
1884년 3월 이후 감사, 유수, 병사를 총판으로, 수령은 분판을 겸임하게 하였다. 1885년 8월 10일 혜상공국은 내무부(內務府)에 속하게 하고 상리국(商理局)으로 개칭하였다.
특권 상업 체제를 기반으로 이들을 보호 육성하려는 것은 개화파들이 지향하는 바와 차이가 있었고, 이는 결국 1884년 12월 갑신정변 때 14개조 정령 중 9번째 조항인 "혜상공국을 혁파한다"로 나타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