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938년에 건축되었다. 축대를 쌓아 길보다 높은 집터를 만들고 그 위에 一자형 사랑채와 ㄷ자형 안채를 연결하여 연속된 지붕 아래 세웠다.
집터 이면도로의 동측에 철대문을 세워 이와 이어진 몇 단의 돌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현관문이다. 현관의 북쪽으로는 안채의 안마당이 있고 서측으로는 사랑채가 있다. 남향한 사랑채는 一자형 평면으로 동측 끝에 응접실을 두고 이의 서측으로 사랑방 · 대청 · 건넌방을 두었다.
이 방들과 대청의 앞뒤로는 반칸폭의 툇마루를 두어 복도로 이용한다. 현관 옆에 바로 응접실을 둔 것은 1930년대 개량 한옥에서 취하던 기법이다. 또 대청의 건넌방은 전통적인 사랑채에서 침방으로 쓰던 것으로 보인다. 툇마루 앞에 유리문을 달아 복도로 쓰는 것도 역시 개량한옥에 쓰이던 기법이다.
사랑채의 구조는 장대석기단 위에 네모뿔대의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굴도리로 결구한 소로수장 오량가구를 이루고 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함석차양을 달고 물홈통을 만들어 빗물을 모아 하수구로 보낸다.
현관에서 북측으로 들어서게 된 안마당은 장방형이다. 이 마당을 둘러싸고 ㄷ자형 평면의 안채가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중앙에 대청을 두고, 서측으로 안방 · 부엌 · 찬방을, 동측으로 건넌방 3개를 두고 이들의 전면에는 반칸폭의 툇마루에 유리분합문을 달아 복도로 이용한다. 이 또한 개량한옥에서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안채는 장대석기단 위에 네모뿔대의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굴도리로 결구한 소로수정집으로 오량가구를 이루고 있다. 장여밑 소로는 딱지소로로 1930년대 집장수들이 쓰기 시작한 것이다. 또 기단 앞에 기단을 따라 돌계단 즉 널보석(一步石)을 둔 점이나 겹처마 팔작지붕에 물홈통을 단 점 등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