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고종 12) 심광세의 9대손 심경택(沈敬澤)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심경택·이경석(李景奭) 등의 서문, 권말에 이식(李植)의 발문이 있다.
5권 3책. 목판본. 장서각 도서와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2에 시 276수, 권3에 해동악부(海東樂府) 44편, 권4·5에 소(疏) 3편, 전(箋) 2편, 상량문 2편, 잡저 3편, 기(記) 1편, 전(傳) 1편, 제문 5편, 부록으로 행장·묘표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각 권마다 목록이 따로 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해동악부서(海東樂府序)」에서는 『해동악부』에 대해 동사(東史) 중 신라·백제·고려 및 조선시대의 사실에서 흥미 있는 제목 44편을 뽑아 지은 것으로, 악부와 역사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하였다.
소 중 「계해시무소(癸亥時務疏)」에서는 광해조에 왕자를 살해하고 국모를 폐위시킨 도적떼들은 일국의 죄인일 뿐 아니라 강상(綱常)의 영원한 죄인이라 지적하고, 이들을 벌하여 기강을 바로잡을 것을 촉구하였다. 또한, 군대는 많은 병사를 두기보다는 정병을 만들 것과 평안도 영변에 다시 중진(重鎭)을 설치하여 북로(北虜)의 침범을 방비할 것 등 시무12조를 건의하였다.
「계해변무소(癸亥邊務疏)」에서는 나라가 쇠약할 때일수록 정걸현신(挺傑賢臣)들이 시의(時宜)를 품달하고 정성을 다해 정무에 노력하면 국가가 부흥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또, 역옥(逆獄)이 잇따라 일어나는데다 변방이 허술하고 창고가 텅 비어 나라가 매우 위태롭다고 지적하며, 장졸(將卒) 모두가 무예를 연마하여 변방의 요새지를 굳게 지킬 것과 압록강·대동강 주변 등에 창고를 지어 군수품 비축에 힘쓸 것 등 안변10책(安邊十策)을 건의하였다.
「유변산록(遊邊山錄)」은 부안현감으로 있을 때 함열사군(咸悅使君)권주(權澍)와 임피사군(臨陂使君)송유조(宋裕祚) 등과 변산을 편력하면서 만든 것이다. 어수대(御水臺)·화룡연(火龍淵)·직연(直淵)·진선대(眞仙臺)·월정대(月精臺)·주암(舟巖)·용암(龍巖) 등의 기묘한 절경을 그려 화축(畵軸: 두루마리 그림)을 만들고, 그림마다 각각 서(敍)를 달아 변산의 명소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주식전(朱植傳)」은 주식이 행한 훌륭한 행의를 찬양한 글이다. 2년 동안 병란과 흉년이 계속되자, 사족으로서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만큼 생활이 어려워진 유모씨(柳某氏)가 자식을 노비로 속여 주식에게 팔고 간 지 10여 년 만에 나타나 사실을 실토하면서 속면(贖免)해 줄 것을 간청하였는데, 주식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쾌히 허락해 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