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불상은 만장사의 주지로 있던 대관(大觀) 스님이 1999년 1월에 새로 불사를 일으키면서 암자 뒤쪽에 묻혀 있는 불상 1구를 발견하여 수습한 석조여래좌상이다. 통일신라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만장사는 본래 화장사(花長寺)였으나 대관 스님이 중창할 때 만장사로 개명했다.
발견 당시 불상과 함께 대좌와 광배까지 모두 발견되었으며, 광배의 일부만이 파손된 상태였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 머리는 낮고 큼직한 육계과 나발이 표현되고 상호는 선정에 든 모습이다. 어깨는 갸름하나 무릎이 두껍고 높아 다소 안정된 자세이다.
착의법은 통견인데 이중으로 대의를 입은 이중착의법의 형식이다. 대의 전체에 표현된 평행의 유려한 의습선, 양 팔과 신체 사이에 보이는 호선, 두꺼운 끝단으로 표현된 승각기와 띠매듭, 양 다리 사이의 부채꼴 의습선 등은 9세기에 조성된 불상의 착의법 및 의습선과 매우 유사하다. 이 불상은 코와 귀의 일부, 양 손의 일부, 오른쪽 무릎, 발의 일부분 등이 보수되었지만 원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우수한 불상이다.
대좌는 복련 · 중대석 · 앙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복련 위로 중대석을 받치는 별석 받침이 특징적이다. 광배는 전체적으로 주형거신광배이며, 2줄의 선으로 두광과 신광이 표현되었다. 광배는 전체적으로 넝쿨 무늬가 여백 없이 조각되어 매우 화려하게 보인다.
이 불상은 팔각연화대좌와 광배를 구비하고 있는 여래좌상으로서 통일신라시대의 엄정한 작풍을 볼 수 있는 불상이다. 또한 대좌의 복련 위로 중대석을 받치는 별석받침이 특징적이다.
이 불상은 착의법과 의습선, 대좌의 별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동화사 석조비로자나불상(863년), 청룡사 석조여래좌상, 비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불곡사 석조여래좌상 등과 함께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