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진당은 응진전(應眞殿) 또는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하며, 내부에는 16나한상과 16나한도가 봉안되고 있다. 이 응진당은 초창 후 1623년(인조 1)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고, 이후 보존에 힘써 현재도 처음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2001년 6월 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송광사 응진당의 창건에 대한 확실한 논거가 그 동안 없었으나, 2000년 응진당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종도리와 장혀에서 초창연대를 밝힐 귀중한 자료가 발견되었다. 종도리 밑 장혀의 묵서명 기록에 의하면, 응진당 초창은 1504년(연산군 10) 2월 13일 상량(上樑)이라 하였고, 이 불사에 참여한 이들은 주지(住持) 숭은(崇隱), 도사(都事) 운석(雲碩), 화주(化主) 영철(靈哲), 대목(大木) 각경(覺冏) · 상운(尙雲) · 설청(雪靑) · 철선(哲宣) · 경희(敬熙) · 정밀(精密) · 시응(時應)이라 하였다.
응진당은 높은 기단 위에 단아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앞에는 조그마한 마당 좌우에 ‘ㄷ’자 모양으로 건물들을 배치하여 넓은 중정이 내려다보인다. 정면과 측면 모두 각 3칸인 목조건물로 기와를 얹은 맞배지붕이다. 정면은 겹처마이며 후면은 홑처마이다. 측면은 바람막이판인 풍판을 설치하였으며, 공포는 1출목식인 주심포 형태이다. 공포형식은 간결하나 첨차의 경사면 처리를 쌍괄호 형식으로 하여 고식(古式)을 따르고 있다.
높은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평방을 두지 않고 창방을 설치하여 낮은 벽을 끼워 넣은 다음, 뜬창방을 얹고 장혀받침 8각형 도리를 이어서 중첩하였다. 공포 부분은 주두 위에 외1출목 형식인 주심포를 얹었다. 내부의 공포형식은 운공형 보아지로 대들보를 떠받치고 있다. 통칸으로 전 · 후면에 배치된 기둥 위에 얹혀진 대들보는 굵어서 건실하며, 대들보 위에는 일반적인 형식인 동자주를 놓지 않고 포대공(包臺拱)을 얹어서 예스러운 모습을 하였다.
가구구조 형식은 좌우 측면은 2고주(高柱) 7량가(樑架)이고, 내부공간은 무고주 7량가로 중간에 기둥이 없어 좁은 공간을 넓게 이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에 불단 위에만 조그마한 닫집을 설치하였으며, 바닥은 전형적인 우물마루를 깔았다.
이 불전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곳은 종도리 부분으로, 이곳에는 화반 위에 도리 방향으로 포대공을 놓고 그 밖을 솟을합장으로 보강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 목조건축에서 고식이라 생각되는 형식이기 때문에 관심을 끌고 있다. 뒤늦게나마 건립연대와 건립 참여자들이 밝혀져 이 시기 불교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