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석불입상은 장흥읍 금산리 제암산(帝岩山) 중턱의 의상암으로 전하는 폐사지에 전해오던 것을 1975년 인근 장흥교도소 정문 앞으로 옮겼다가 1994년 유치면 봉덕리의 보림사(寶林寺) 경내로 모셔온 불상이다.
광배(光背)와 불신(佛身)을 한 돌에 새겼는데 거신광(擧身光)의 광배는 상당 부분 파손된 상태이다. 민머리에 커다랗고 둥근 육계(肉髻)가 솟았으며, 얼굴은 원래 둥글고 온화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지금은 보수되어 이목구비가 여성적이다. 체구는 아담한 편으로, 각부의 균형과 비례감이 좋고 조각기법도 우수한 편이다. 대의(大衣)는 양 어깨를 가린 통견식(通肩式)으로 입었는데, 가슴을 U자형으로 팠으며 대의 깃이 왼쪽 어깨 위에서 밖으로 접혀져 세모꼴의 주름을 이루었다. 양 손목을 거쳐 발밑까지 두꺼운 대의자락이 둔중하게 흘러내리고 있는데, 전면에 U자형의 넓은 주름이 음각되어 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은 가슴 앞에 대어 엄지와 둘째손가락을 둥글게 맞대었으며, 왼손은 손목 아랫부분이 깨어져 원형을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이 상은 전체적인 조형감과 자세, 손의 위치, 옷주름의 표현 등에서 남원 세전리 석불입상, 남원 미륵암 석불입상 등과 같은 일련의 나말여초 시기의 불상과 유사성을 보인다.
후백제지역의 나말여초 시기의 조각, 특히 장흥, 남원 일대의 불상들에서는 부드럽고 섬세하며 사실적인 양식 경향이 보이는데, 여기에는 이 지역 선종의 융성에 따른 승려들의 빈번한 왕래와 단월(檀越: 시주자)들의 지원, 그리고 남해안 지역으로 새로이 유입되었을 외래 조각적 요소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배경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석불입상도 이 당시의 불상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