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영은 광복 이후 『한국불상연구』·『불교미술』 등을 저술한 학자로 불교미술사학자이다. 1941년에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였다. 개성박물관장이었던 우현 고유섭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한국미술사 연구에 뜻을 두고 있었다. 1948년 국립박물관 박물감을 시작으로 고고미술사학 연구에 헌신하였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석굴암 해체 복원 작업에 관여했으며, 불국사의 복원을 연구했다.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경주 문무대왕릉,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등의 유적 조사가 있다.
개성 출신. 본관은 창원. 호는 초우(蕉雨). 1918년 경기도 개성에서 출생하여 1931년 개성 제일보통학교와 1936년 서울의 경복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마쓰야마고등학교〔松山高等學校〕를 거쳐 1941년에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경제학부를 졸업하였다.
졸업 직후 이와나미〔岩波〕문고에서 요직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멀리 만주의 하얼빈에서 광복을 맞이하여 귀국하였다. 광복 직후 개성상업중학교 교감으로 봉직하였으며 1948년 1월부터 국립박물관 박물감을 시작으로 고고미술사학 연구에 헌신하였다. 황수영은 재학시절 개성박물관장이었던 우현 고유섭(高裕燮, 1905∼1944)의 가르침에 큰 감화를 받아 일찍부터 한국미술사 연구에 뜻을 두고 있었기에 박물감 소임은 이러한 의지가 실천에 옮겨지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 제일의 흥왕사 옛터의 시굴 조사와 강원도 양양 선림원지에서의 신라 범종 수습은 미술사 연구의 첫걸음이었다.
6 · 25 전쟁 이후 서울이 수복되면서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에 출강하던 중 1956년부터 동국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 이후 동국대학교 재직 중 박물관장, 대학원장, 총장을 역임하는 사이인 1971년부터 1974년까지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중책을 맡기도 하였다. 총장직에서 정년한 후에는 명예교수로 위촉되는 한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 대한민국학술원 정회원 등으로 위촉되었었다. 이밖에 한 · 일 회담대표단 전문위원 및 대표, 한국미술사학회 대표위원, 한국범종연구회 회장, 한국대학박물관협회 회장, 문화재위원회(현,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황수영은 중학생 시절부터 국가유산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경주 수학여행 때 절터에서 얻은 연화문 막새기왓장을 평생 간직하였고 이러한 학구열이 평생에 많은 업적을 남기도록 했다. 1960년대 중반 여러 해에 걸친 석굴암 해체 복원 작업에 관여하였으며 불국사의 원형 복원을 연구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1962년 지정),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962년 지정), 경주 문무대왕릉(사적, 1967년 지정),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1973년 지정)과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1995년 지정) 등의 유적 조사는 대표적인 업적이다.
논저로는 고유섭 선생의 유고들을 전쟁 중에도 귀중히 간직하여 10권에 달하는 『고유섭유저』를 발간하였다. 황수영의 저서로는 『한국불상연구』, 『불교미술』 등 33권, 편저는 20권, 논문은 조각, 탑, 석등, 사찰, 사지, 회화, 전적, 금속공예, 도자기, 금석문, 일반미술 등 220여 편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공적과 석굴암 복원 업적으로 1964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동안의 정리된 은사의 유저로는 1993년에 『우현고유섭전집』 전4권을 간행하고, 1999년에는 『황수영전집』 전6권을 정리하였다.
한국 미술사학계(美術史學界)의 태두로, 문헌과 현지조사 등 정확한 고증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불교미술 연구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5 · 16민족상,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