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태후(恭睿太后, 1109~1183) 임씨는 인종의 왕비로서 의종(毅宗) · 명종(明宗) · 신종(神宗)의 모후이다. 1126년(인종 4) 6월 20일 인종과 혼인하여 연덕궁주(延德宮主)로 불렸다.
1127년(인종 5) 4월 11일에 장남인 의종을 출산하였고, 1129년(인종 7) 5월 10일 왕비로 책봉되었다. 1131년(인종 9) 10월 17일에 명종을 낳았고, 1144년(인종 22)에 신종을 낳았다. 1146년 의종이 즉위하고 모후를 왕태후로 존칭하였다. 1183년(명종 13년) 11월 계미일에 세상을 떠나 공예태후로 시호를 올렸고, 같은 달 11일에 순릉(純陵)에 안장하였다.
1183년 공예왕후를 순릉에 안장하였고, 1184년 금나라에서 조문을 보내왔다. 왕후의 진전사원(眞殿寺院)은 인종과 더불어 경기도 장단군 오관산 아래, 영북면 현화리 영통동에 있는 영통사(靈通寺)이다. 고려시대에 왕릉의 관리는 제릉서(諸陵署)를 설치하여 담당하였다.
인종 대에는 왕릉이나 왕후릉을 수호하기 위해 산직장상(散職將相)이라는 위숙군(圍宿軍)을 두어 능을 수호하도록 하였다. 위숙군의 숫자는 능마다 달랐는데, 공예태후의 순릉은 산직장상 4명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17년(고종 4) 3월 기미일에 순릉이 도적떼에 의해서 파헤쳐지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관리 소홀로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순릉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므로 묘제나 널방의 구조 등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현재 개성특별시 남쪽에 자리해 있는 인종의 장릉(長陵) 주변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려에서는 왕후나 태후에게 휘호와 함께 능호를 붙이는데, 순릉은 공예태후의 능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