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동구릉 목릉 정자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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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동구릉 목릉 정자각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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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유적
문화재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후기 동구릉에 있는 목릉에 딸린 정자각(丁字閣). 능건축.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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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후기 동구릉에 있는 목릉에 딸린 정자각(丁字閣). 능건축. 보물.
개설

목릉은 조선 14대 선조(宣祖)와 원비 의인황후 박씨, 계비 인목황후 김씨의 능이다. 동구릉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각기 다른 언덕에 왕과 왕비의 능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으로 능역 안에 하나의 정자각과 3기의 능이 자리하고 있다. 정자각은 선조의 능 앞에 세워져 있다.

역사적 변]천

목릉은 1608년에 건원릉 서쪽에 조성되었는데 능에 물이차고 터가 좋지 않다는 상소에 따라 1630년에 건원릉 동쪽 현 위치로 천장되었다. 그 북쪽 가까운 곳에는 이미 첫 왕비인 의인왕후의 능인 유릉(裕陵)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선조의 능을 천장하고 유릉과 목릉의 능호를 합하여 목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1632년에 계비 인목대비가 세상을 떠나자 왕릉의 동쪽에 능침을 마련하면서 현재와 같이 세 능을 이루게 된다.

정자각은 1608년에 건립한 것을 1630년에 천릉하면서 이건하였다. 이건하면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고, 1816년(순조 16), 1879년(고종 16), 1899(고종 36)에도 수리가 있었지만 『선조목릉천봉도감의궤(宣祖穆陵遷奉都監儀軌)』(1630)와 비교해 보면 현재의 모습과 대부분 일치한다.

내용

목릉 정자각은 정전과 배위청이 丁자형 평면을 이루며, 일반적인 정자각의 규모와 형태를 하고 있다. 장대석으로 조성된 기단은 남북으로 긴 장방형이며 상면은 3개의 서로 다른 단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전면의 월대, 월대 상면에 비해 반 단정도 높게 조성된 배위청 기단, 그 뒤에 월대 보다 1단 높게 정전의 기단을 설치하였다. 정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다포식 공포를 짰다. 현존하는 정자각 중에 다포식 공포를 갖춘 건물은 이 건물이 유일하다. 공포는 내외 1출목이며 외부 살미는 약간의 곡선을 갖추면서 아래로 처져있고 소첨차와 대첨차는 높이에 비해 길이가 길어 안정된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17세기 초에 다시 지어진 문묘 대성전의 공포 짜임과 유사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어서 이 시기 많지 않은 다포식 공포의 좋은 사례로 평가된다.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배위청은 정면 1칸, 측면 2칸이다. 공포는 출목없이 기둥 위에 주두와 보머리가 바로 얹어지며, 기둥 사이는 내외단을 삼분두형으로 처리한 살미와 첨차를 결구하여 화반 역할을 하도록 꾸몄다. 정전은 측면 2칸 구조에서 보통은 평주와 합장보를 사용하는데, 이 건물은 드물게 2개의 고주를 세워 벽체를 구성하였다. 나머지 창호나 화방벽을 한 벽체 등은 대체로 조선시대 일반적인 정자각의 제도를 잘 따르고 있다.

특징

건물의 규모와 형태는 전형적인 정자각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공포의 구조가 조선 왕릉의 정자각 중에 유일한 다포형식의 건물이다.

의의와 평가

목릉 정자각은 1630년에 작성된 선조목릉천봉도감의궤(宣祖穆陵遷奉都監儀軌)와 비교해 볼 때 이건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조선왕릉 정자각 가운데 유일한 다포형식의 건물로서 임진왜란 직후의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3개의 봉분을 연결한 정자각이란 의미와 왕릉제도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선조목릉천봉도감의궤(宣祖穆陵遷奉都監儀軌)』(1630)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산릉도감을 통해본 17세기 정자각의 복원적 고찰」(구선이, 김동욱, 한국건축역사학회추계학술발표대회논문집, 2011)
「조선후기 영악전 기능수용에 따른 정자각 평면 변화 고찰 」(신지혜, 건축역사연구, 2009)
「조선시대 산릉 정자각의 연원 소고」(김동욱, 한국건축역사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논문집, 2008)
「조선왕릉 8간 정자각 고찰」(김왕직, 한국건축역사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논문집, 2008)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홍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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