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후반 현대미술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바우하우스의 조형이념을 신조로 해 변영원이 주축이 되어 구성한 단체이다. 회화의 영역을 넘어서 건축 및 디자인 등과 융합하였고 미의 이념을 기반으로 열린 태도를 표방하였는데,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1957년 변희천·조병현·손계풍·변영원·김관현·이상순·황규백 등 7인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신조형파는 이름 그대로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이어받아 실생활과 예술을 조화롭게 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화가 이외에 건축가, 디자이너들이 모여 동인의 형태를 띤 인적 구성은 특기할 일이다. 현대미술가협회의 내분으로 회원이 옮겨와 14명까지 늘었으나 앵포르멜의 거센 경향과 다른 구성주의 회화는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1959년 3회전까지 ‘신조형파’라는 명칭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1960년에는 현대미술가들의 단체를 전국 규모로 통합한 ‘현대미술가연합 전국대회’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각 단체들의 통합 기류 속에서 해체되었다.
1957년 6월 27일부터 7월 4일까지 동화화랑에서 제1회 ‘신조형파’ 전시회가 있었다. 이들은 팸플릿에 ‘신조형파전’이라는 도안된 글자를 명시하였으며, 팸플릿 내부에는 선언문까지 기재하고 있어 결집을 위한 충실한 준비과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등사로 인쇄한 ‘동인규약’까지 마련하였던 것으로 보아 체계성을 추구한 조직이었다. 이들의 선언은 “현대란 무엇이냐? 창조는 무엇인가? 그리고 현실은 어떠한 것이냐?”에서 시작한다. “새로운 진실을 확립하고 조형예술을 지향하는 우리들은 자연을 측량한다. 그러나 소위 자연주의자는 아니다”라며 현실을 추구한다는 주장과 함께 구체적인 강령을 내놓았다. “1. 우리들은 민족미술의 창조적 전통성을 계승한다. 2. 우리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창조탐구에 전념한다. 3. 우리들은 현대미술의 생활화에 직접 행동한다.”이다. 이 강령은 다시 동인규약에도 명시되었는데, 17개 조의 규약에 이어 창립회원인 변희천·조병현·손계풍·변영원·김관현·이상순·황규백의 명단을 기록하였다. 1회전을 안내한 신문기사들은 이들을 화가·건축가·디자이너의 구성이라고 소개 하였다. 이러한 인적 구성이나 현대적인 디자인을 강조한 글들을 통해 이들이 예술과 생활의 조화를 꾀한 바우하우스 운동의 모습으로 신조형파를 구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당대의 앵포르멜적인 추상 회화와 서정적 구상에 기반을 둔 회화, 그리고 절대 회화와 구성 등을 동시에 보여준 신조형파의 전시는 기존 시각에서는 혼란스러운 것이어서 1회전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대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포용하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미술을 펼치고자 한 야심 찬 현대미술 단체였다.
1회전에 출품한 작가와 작품은 변희천의 「기념일」·「해변」 등 4점, 조병현 「만추」·「신록」·「여름」·「길」·「화계사」 5점, 손계풍의 「단면」·「벽A」·「벽B」·「벽C」·「벽D」·「구성A」·「구성B」·「구성C」·「구성D」까지 9점, 변영원의 「나타난 주체」·「서울역 부근」·「오브제A」·「오브제B」 등 6점, 김관현의 「행진곡」·「죄와 벌」 등 5점, 이상순의 「정거장」·「사랑」·「꿈」·「모역시안(某驛試案)」 4점, 황규백의 「장군」·「어떤 행렬」·「작품」 등 5점 도합 38점을 출품하였다. 특히 손계풍은 물질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개념적인 입체작품을 보여주었다.
2회전은 1958년 6월 8일부터 14일까지 중앙공보관에서 가졌는데 이때 회원은 변희천·조병현·변영원 이외에도 김종하·김영환·이철이·김충선·이철·이상욱·이수헌·안영목·김창근·정건모·박역환·이일 등으로 수가 대폭 늘었다. 이렇게 규모가 확장된 것은 현대미협의 내분으로 일부 회원이 신조형파로 옮겨왔기 때문이었다. 출품작은 변영원의 「천지」 등 5점, 황규백의 「대화」 등 3점, 김충선의 「네 개의 구멍을 개방한 원형」 등 3점, 김영환의 「새로운 5월을 열고 날개를 지닌 서정은 나르리」 등 7점, 조병현의 「겨울의 서정A」 등 5점, 이상순의 「비조화의 주제를 위한 에스키스」 등 4점, 정건모의 「산」 외 1점, 이철의 「기립하는 정신의 구성」 등 4점, 변희천의 「봄과 여인들」 등 3점, 이철이의 「8월 15일」 등 3점, 이상욱의 「산」 등 3점, 손계풍의 「백」·「흑」·「청」 3점 등 총 45점이었다.
3회전은 1959년 8월 1일부터 7일까지 중앙공보관에서 있었으며 이때 출품작은 40여 점으로 김영환·김충선·문철수·변영원·이상순·이철·이철이·정건모·황규백·조병현 등이 참여하였다. 1960년 현대미술을 신조로 한 여러 단체가 ‘현대미술가 연합회’를 결성하였는데, 신조형파도 이와 함께하였다. 1961년 가을에 화단통합 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신조형파도 해체되었다.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국내 미술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단체이다. 실용적 미의 구현과 다양한 추상미술의 존재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