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출신지 미상. 신라는 연이은 흉년과 중앙 정부의 조세독촉으로 인해 889년(진성왕 3) 지방 곳곳에서 도적이 일어나 점차 혼란에 빠졌다. 이때 김처회(金處誨)는 병부(兵部)의 차관직인 시랑(侍郞)을 맡아 약탈을 일삼는 도적을 진압하였다. 그 뒤 893년(진성왕 7)에 당나라 황제에게 정절(旌節)을 바치는 사신인 납정절사(納旌節使)를 맡아 배를 타고 당나라로 가다가 익사(溺死)하였다. 뒤이어 혜성군(槥城郡) 태수 김준(金峻)이 익사 사건의 시말을 알리는 고주사(告奏使)로 임명되어 당나라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