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楊志)는 후삼국시기에 ‘오어곡성(烏於谷城)’이라고도 불리던 부곡성(缶谷城, 지금의 군위군 부계면)을 거점으로 활동했던 호족으로 스스로 ‘장군’이라고 하였다.
927년 11월 후백제왕 견훤이 대목군(大木郡, 지금의 칠곡군 일대), 벽진군(碧珍郡, 지금의 성주군 일대) 등을 공격하여 낙동강 상·중류 지역을 장악하고, 928년 11월에는 명식의 근거지인 부곡성으로 진격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과 가까웠던 양지는 장군 명식(明式)과 더불어 견훤이 보낸 정예 군사의 공격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휘하의 군사 1천여 명이 전사하자 견훤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그 뒤 왕건은 자신의 배반한 양지를 벌하고자 그의 처자를 군중 앞에서 죽여 시신을 시장에 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