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옥겸(兪鈺兼,18831922) 저술, 유성준(兪星濬,18601934) 교열로 1908년 우문관(右文館)에서 국한문혼용체로 간행하였다.
동양사를 왕조중심 사관에 의거하여 중국 중심으로 조선과 일본·동남아시아·몽골, 인도와 페르시아도 다루었으며, 태고부터 1908년까지를 상고·중고·근고·근세로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저자는 전문학교 졸업한 후 법률·역사 교수를 지냈으며, 일본어 교과서와 중국책들을 참고하여 『중등외국지리(中等外國地理)』·『중등동양사(中等東洋史)』·『대조서양사연표(對照西洋史年表)』·『서양사교과서(西洋史敎科書)』등의 교과서를 펴냈다. 교열자 유성준은 저자의 삼촌으로 한말 학부학무국장과 일제강점기의 중추원참의를 지냈다.
1895년 조선정부가 신교육조칙을 발표하고 이에 근거해 신교육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새로운 학교 교과과정에 맞는 동양사 교육에 필요한 교재를 제공하기 위해 일본의 교과서나 서적을 참고하여 체계적으로 편찬한 것이다.
사찬본. 유옥겸이 찬하고 유성준이 교열하여 1908년(융희 2)에 우문관에서 국한문혼용체로 간행하였다. 표지에 융희2년 6월 27일 학부검정 사립학교역사과(고등교육학원용)란 표기로 검정을 필한 교과서임을 밝혔다. 전체 면수는 230쪽이다.
정치사와 제도사를 중심으로 서술하였으며, 동양의 현세를 신속히 알리려는 취지에서 상고사는 간략히 하고 근세사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전체구성은 서론이 수편(首編)으로 동양사의 의의와 범위를 다루고, 상고사는 태고에서 주말(周末)까지 9장, 중고사는 진(秦)의 흥기에서 몽골[蒙古] 발흥까지 29장, 근고사는 몽골 발흥부터 명말(明末)까지 15장, 근세사는 청조(淸朝)개국부터 1908년까지 13장으로 구성되었다.
중국 중심이지만 일본, 동남아, 북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서아시사도 다루었다. 또한 내용을 요약한 어휘로 두주를 달았으며, 외래어를 한자나 한글 자모로 표기하였다는 점 등이 주목된다.
대한제국의 신교육정책에 따라 체계적으로 편찬된 동양사교과서였다. 기년은 단군연호를 주로 표시하고, 서력과 중국원력을 부기해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서술하였다. 정치사와 제도사 중심에서 벗어나 대외관계사, 학술사, 종교사까지 확대하여 역사인식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현재 쓰지 않는 자모들을 사용한 외래어표기는 국어학연구자에게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