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개벽사에서 지식 없는 가정부인들을 계몽하여 부인의 역할인 현모양처 완성을 꾀해 건전한 가정을 이루고 나아가 민족의 장래에 희망이 생기도록 하자는 목표로 발행한 월간잡지이다. 부인들이 해독하기 쉽도록 순국문으로 편집하고, 기사의 내용도 남편 잘 모시기, 아이 잘 키우기, 살림 잘하기 등을 주요 주제로 다루었다. 편집진들의 결정에 따라 1923년 8월호 통권 14호로 종간되었다. 1923년 9월 『신여성(新女性)』 창간으로 이어졌다.
『부인(婦人)』이라는 잡지명 그대로 부인을 계몽하여 ‘건전한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창간되었다. 편집 주체의 한 사람인 박달성은 ‘아무리 지식 없는 부인’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잡지를 기획하였다. 편집주체들은 초기에는 ‘지식 없는 부인’을 계몽 대상으로 생각하고 미용전문가인 현희운에게 편집 책임을 맡게 했으나 잡지를 발간하면서 교육받지 못한 '구여성'이 근대 잡지의 독자층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편집인들은 근대 교육을 받은 여성들을 먼저 계몽하고 이들을 통해 구여성도 계몽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부인』을 종간하고, 근대 교육의 혜택을 받은 신여성들을 독자로 한 『신여성』을 창간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편집 겸 발행인은 이돈화, 편집 주임은 창간 시에는 현희운, 이후 박달성으로 변경되었으며, 인쇄인은 민영순(閔泳純), 인쇄소는 신문관(新文舘), 발행소는 개벽사이다. 잡지의 체제는 국판으로 본문은 70쪽 정도의 분량이며 순국문체이나 국문음에 한자를 쓰는 방식으로 편집하였다. 매월 1일에 발행하는 월간잡지로 가격은 1개월에 30전(錢) 3개월에 85전, 6개월에 1원 60전 1년에 3원이다. 창간 후 1923년 8월호를 마지막으로 발간하고 종간하였다. 국립도서관, 아단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케포이북스에서 14권을 영인본으로 발행하였다.
아무리 지식 없는 부인이라도 다 알아보게 재미있고 유익하게 구성하려는 의도에서 부인의 도리, 남편 잘 섬기기, 완벽한 살림살이, 아이들 잘 키우기에 대한 주제를 중심으로 편집하였으며 그 외 손님 접대, 위생에 관한 기사도 쉽게 이해하도록 기획하였다. 이같은 의도에 따라 세계여성에 관한 주제보다는 '조선부인'을 표준으로 하는 기사를 중심으로 게재하였다. 또한 자유연애나 여성해방 논의는 거의 다루지 않았고, 당시 여성인권이나 자유연애 등을 주장하는 신여성들의 글도 게재하지 않았으며 대다수 남성 필진들로 구성되었던 점에서 여성잡지로서의 한계가 드러난다. 이는 편집진이나 집필자들이 현희운을 제외하면 대부분 개벽사의 남성 직원들인 이돈화, 김기전, 박달성, 차상찬, 방정환 등이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이들은 『부인』 이외에도 개벽사 발행의 『개벽』, 『어린이』 , 『신여성』의 주요 필자로도 활약하였다. 실제 여성의 글은 여학생의 짤막한 보고나 감상문, 혹은 남편을 섬기거나 살림을 요령 있게 하는 방법 등에 한정되어 있다.
부녀들을 독자로 한 순국문 잡지로 세계여성들에 대한 정보보다는 조선부인을 표준으로 한 기사를 중심으로 하여 한국 여성들의 계몽을 추진한 잡지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남성지식인의 관점에서 여성의 역할을 서술한 다수의 기사는 당시 남성지식인들의 여성담론의 내용 및 성격 고찰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