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사(桐華寺)의 인악당(仁嶽堂)의첨(義沾, 1693∼1764) 진영은 얼굴은 좌안 7분면이며, 신체도 칠분상(七分像)으로 그려진 전신 좌상(全身坐像) 형식이다.
인악당 의첨은 18세기 초 동화사를 중창한 운암당(雲岩堂)옥준(玉峻)의 4세손으로, 조선 후기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다. 대구 달성 출신이었던 그는 동화사에 머물며 문하에 제자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문집과 유물, 유적이 많이 남아 전하고 있다. 동화사에 남아 전하는 그의 진영은 특히 능숙한 초상화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며, 온후한 성품까지 잘 묘사되어 있는 점에서 18세기 후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인악당은 주장자(柱杖子)를 쥐어 어깨에 기대놓고 왼손으로 염주를 돌리는 모습이다. 화면 왼편에는 ‘인악당대사의첨진(仁嶽堂大師義沾眞)’이라는 영제(影題)가 있다. 가운데 손가락 세 개로 염주를 쥔 대부분의 진영과 달리, 염주알을 굴리기 위해 엄지손가락으로 염주알을 누르고 있는 표현은 매우 구체적이다.
인악당 의첨 진영은 결손과 화재의 흔적이 있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완성도 높은 초상으로 꼽힌다. 주인공인 의첨은 좌향의 측면관에 방석을 깔고 앉아 있는데, 왼손에는 염주를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다. 벽면의 배경은 황토색 바탕에 먹선의 칠보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바닥은 붉은색을 띠는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백색의 방석을 깔고 앉아 있다.
측면을 향한 자세는 자연스럽고, 피부에 미묘하게 선염(渲染) 기법으로, 얼굴과 손의 굴곡을 표현하였다. 장삼에 표현된 옷 주름에는 음영 처리를 하지 않았으나, 가사의 조(條)와 장삼의 안감은 바탕색보다 약간 짙은 색을 써서 신체가 평면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눈동자의 홍채를 황색으로 칠하고 동공을 그린 점, 눈 안쪽 부분의 붉은 근육을 묘사한 점, 가는 세필로 속눈썹을 그린 점, 그리고 눈꼬리에서 퍼지는 가는 주름 사이에 희미한 선염을 표현한 점은 조선시대 사대부의 관복 초상에서 볼 수 있는 능숙한 초상화 기법이다.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눈매와 지긋이 다문 입 등에서 대선사의 인자한 성품이 엿보이고 있다.
이 진영은 화면에 보이는 능숙한 초상화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그림으로, 온후한 성품까지 잘 표현되고 있다. 동화사에는 인악대사의 업적을 기린 비가 남아 있어 제작 시기를 짐작할 수 있고, 제작 배경 기록이 모두 남아 있어 회화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