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78.5㎝, 가로 235㎝. 표충사 아미타후불탱은 1861년에 제작된 것으로, 서방 극락정토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을 그리고 있어 아미타설법도(阿彌陀說法圖)로도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설법하는 아미타불과 여러 권속들을 함께 그린 군도 형식의 아미타후불화가 유행하였다. 아미타후불화는 극락전이나 염불당의 후불화로 봉안되는데, 아미타불화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석가모니불만큼 널리 알려진 아미타불은 극락정토를 주재하는 부처로, 무량수(無量壽) 또는 무량광(無量光) 곧 중생에게 무량한 수명과 광명을 주는 부처라는 뜻이다.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은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등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미망의 세계에서 헤매는 중생 누구나 ‘나무아미타불’만 염불하면 죽어서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는 아미타정토신앙은 장소와 시대를 막론하고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염불신앙으로 널리 성행하였다. 아미타신앙은 시대와 계층을 막론하고 유행했기에 일찍이 여러 종류의 그림으로 그려졌다. 아미타불이 상주하는 극락정토의 장엄한 모습을 묘사하거나 극락세계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을 그린 그림, 아미타불과 권속들이 내영하여 임종하는 사람을 맞이하는 그림 등이 조성되었다.
표충사의 서래각(西來閣)에 봉안되어 있는 아미타후불탱화로 면 바탕에 채색한 것이다. 아미타후불화는 극락전의 후불화로 봉안되는데, 조선 말기에 이르면 염불신앙의 성행으로 염불당(念佛堂)에도 봉안되면서 아미타불화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그림의 형식은 중앙에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아미타불을 협시보살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비롯한 팔대보살이 둘러싸며,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등 십대제자, 사천왕, 팔부중 등이 협시하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표충사 아미타후불탱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과 세지, 문수와 보현, 준제와 지장보살 등의 6대 보살,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가섭과 아난 등 6대 제자, 4천왕과 2금강 등을 대칭으로 그려 넣은 간단한 배치 구도이다. 채색은 적색과 녹색 안료를 주조색으로 하면서 밝은 색조의 분홍색과 청색을 가미한 설채법을 구사하였고, 사천왕의 투구를 비롯한 다문천의 보탑에는 금박을 붙였다.
화면 하단에 마련된 화기(畵記)에 따르면, 이 불화는 1861년에 표충사 만일회(萬日會)와 관련하여 조성된 것으로 원 봉안처는 산내 암자로 추정되는 ‘연□암(連□庵)’임을 밝히고 있다.
표충사 아미타후불탱은 아미타삼존을 중심으로 4보살과 6제자, 사천왕과 금강 2구를 화면에 꽉 차게 담아 그린 간단한 형식의 불화이다. 특히 청도 운문사 아미타극락회도(1861년), 의성 지장사 아미타극락회도(1891년), 은해사 백흥암 아미타극락회도(1897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무릎을 꿇고 앉은 사천왕상과 화면의 배치 방식을 통해서 동일 도상을 공유한 19세기 경상도 지역 화사의 교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그림 아래의 화기에는 제작 시기와 봉안처가 잘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19세기에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한 염불계인 만일회(萬日會)가 표충사에서 설행되었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표충사 아미타후불탱은 작품의 상태도 양호하고 강렬한 색감과 화면 구성 등 당시 화풍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도상을 공유하는 방식 등 경상도 지역 화사의 교류 경향 및 19세기의 불교회화 양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