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사림동 안희상 소장 고문서 및 성책류 일괄은 1700년대(숙종 26) 이후 창원 퇴촌리(退村里)에 세거하고 있는 순흥안씨(順興安氏) 가문의 고문서와 성책류들이다. 고문서로는 호구단자, 소지, 수표, 통문, 완문, 서목, 전령, 차첩, 첩정, 명문, 입안, 관문, 원정, 족징 문서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성책류로는 종안, 선사, 취정록, 회산부선생안, 퇴은유사, 소헌유사, 퇴우유고, 간찰축 등이 있다. 2011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고문서는 14종 81점의 크기가 모두 달라 일일이 크기를 소개할 수 없다. 성책류는 8종 10책이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표제 | 크기 | 분량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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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안씨종안(順興安氏宗案) | 29.0×23.7cm | 불분권1책, 12장 | 사주단변(四周單邊), 유계(有界), 8행(行) 14자(字), 사침선장(四針線裝) |
순흥안씨선사(順興安氏先事) | 30.8×18.9cm | 4권 2책, 212장 | 사주단변, 유계, 10행 23자, 사침선장 |
취정록(就正錄) | 32.5×18.5cm | 불분권1책, 74장 | 성재문인(性齋門人) 정재건(鄭在建, 1826∼?)의 종사기(從師記) |
회산부선생안(檜山府先生案) | 24.9×19.1cm | 불분권1책, 16장 | 회산읍관안(檜山邑官案), 오침선장(五針線裝), 퇴우(退愚) 가장(家藏) |
퇴은유사(退隱遺事) | 28.4×20.1cm | 불분권1책, 31장 | 사주단변, 무계(無界), 10행 20자, 오침선장 |
소헌유사(嘯軒遺事) | 28.4×20.1cm | 불분권1책, 52장 | 사주단변, 무계, 10행 20자, 오침선장 |
퇴우유고(退愚遺稿) | 27.6×20.0cm | 4권 2책, 152장 | 사주단변, 무계, 10행 20자, 오침선장 |
〈표1〉 |
표제 | 장정 시기 | 크기 | 편수(篇數)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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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축(札軸) | 신축(辛丑) 7월 | 44.9×31.7cm | 44 | 내지(內紙) 39장. 성재(惺齋) 안몽백(安夢伯, 1762~1838) 가숙장본(家塾藏本) |
〈표 2〉 |
고문서는 1849년(헌종 15)부터 1888년(고종 25)까지의 호구단자 14점, 위조수표(僞造手標)와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 44점 48매, 암장(暗葬) 관련 수표(手標) 6점, 통문(通文) · 완문(完文) · 서목(書目) · 전령(傳令) · 족징(族徵)문서 각 2점, 첩정(牒呈) · 칙령(勅令) · 차첩(差帖) · 입안(立案) · 관문(關文) · 원정(原情) · 명문(明文) 각 1점 등 14종 81점이다.
성책류는 순흥안씨 종안(宗案) 1책과 선사(先事) 2책, 취정록(就正錄) · 회산부선생안(檜山府先生案) 각 1책 『퇴은유사(退隱遺事)』 · 『소헌유사(嘯軒遺事)』 · 『퇴우유고(退愚遺稿)』 등 문집 초고 4책, 간찰축(簡札軸) 1책이다.
성책류 가운데 『종안』은 당시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순흥안씨의 성인 남자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선사』는 순흥안씨 집안의 여러 인물과 관련된 기록으로서 이 책만으로도 이 지역 순흥안씨 가문의 역사를 세세히 알 수 있다.
『취정록』은 창원 완암(完巖)에 거주하였던 정재건(鄭在建, 1826~?)이란 인물이, 김해부사로 부임해온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문하에 들어가서, 보고 듣고 묻고 배웠던 여러 가지 사실을 기록해 둔 것으로, 1865년(고종 2)과 1866년(고종 3) 사이의 성재 문인들의 동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회산부선생안』은 역대 창원부사들의 성명 및 부임과 이임 사항을 기록해 둔 것이다. 지금 원본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이 자료는 사본이기는 하지만 창원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문집 초고는 퇴은(退隱) 안두철(安斗喆, 18091876)의 『퇴은유사』 1책과, 그 아들 소헌(嘯軒) 안정석(安貞錫, 18361911)의 『소헌유사』 1책 및 소헌의 손자 퇴우(退愚) 안지현(安祉鉉, 1887~1922)의 『퇴우유고』 2책 등이다. 이들 이외에도 이 가문에서는 대대로 문한이 있었으나 특히 이 3인의 경우 문집 초고가 남아 있으므로, 이들 초고는 이 집안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창원을 중심으로 하는 인근 지역 유림과의 교유 내용을 연구한다면, 앞으로 이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간찰축 또한 함안에 세거하던 순흥안씨가 1700년대 후반부터 180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 인물과 어떻게 교유하고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자료로, 지역사 연구에 있어서는 더 없이 좋은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