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롯보다는 한 폭의 그림같은 영화적 이미지를 통해 표현된 예술영화이다.
노승 혜곡(이판용)과 동자승 해진(황해진)이 함께 지내는 산사로 기봉(신원섭)이 찾아든다. 기봉은 속세에 홀로 둔 맹인 어머니에 대한 걱정에 시달리면서도 도를 깨우치기를 갈망하는 젊은이다. 혜곡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행하다 큰 부상을 입는다. 기봉은 자신의 입적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혜곡과 교감하며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도를 깨우치려 한다. 하지만 기봉은 여전히 세속적 욕망에서 비롯된 번민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던 중 입적을 앞둔 혜곡은 기봉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자신을 화장시켜달라고 부탁한다. 영화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동자승 해진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생과 사, 자연과 생명의 신비함 등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배용균이 제작, 연출, 각본, 촬영, 미술, 편집, 조명 등 영화의 전 과정을 담당해 완성되었다. 출연배우는 모두 연기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였다. 기획 8년, 제작 4년이라는 오랜 제작 기간이 소요된 이 작품은 1980년대 한국 예술영화의 표본이라 일컬어진다. 제42회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에 출품되어 최우수작품상인 금표범상을 비롯해 감독상, 촬영상, 청년비평가상 등을 수상하였다.
이 작품이 이처럼 높게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보다는 영화의 이미지 때문인데, 롱테이크(long-take)와 몽타주(montage), 롱 쇼트(long shot)와 클로즈업(close-up)을 오가는 이 영화의 스타일은 예민하고 신중한 시선으로 인간과 자연을 포착하고 있다. 감독은 때로는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때로는 거리를 두고 관조하며 한 폭의 그림같은 예술적 작품으로 영화를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한국 예술영화로서는 최초로 개봉과 함께 14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