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분 내의 시간에 뉴스와 계몽적 성격을 지닌 문화영화를 포함하고 있다.
1945년 9월 4일 미군정의 허가 하에 조선영화건설본부의 이재명, 성동호, 강신웅이 촬영하기 시작한 뉴스영화로, 10월 21일 「해방뉴스」 2편과 「특보」 2편이 공개되었다. 이후 조선영화동맹의 제작주체인 조선영화사에서 제작을 이어갔으며, 1947년까지 14편(특보 포함)을 만들었다. 8·15 기념행렬, 여운형의 좌우합작위원회 발표, 미소군 진주와 항복조인식, 전재동포 구제 모습, 수마내습(水魔來襲), 조선의 관광지, 스포츠와 문화 행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4편 중 한국영상자료원이 민중영화주식회사 제작으로 된 1946년 작 「해방 뉴-쓰」(특2호), 「해방 뉴-쓰」(특3호), 「해방 뉴-쓰」(특보)와 「해방 뉴-쓰」(4호)의 4편을 2005년에 발굴해 소장하고 있으며, 국가기록원은 조선영화사가 만든 「해방뉴스」 두 편과 일본의 민중영화주식회사가 편집한 「해방조선을 가다」(1947)를 2007년 발굴해 소장하고 있다.
그 제작 주체가 미군정과 공조한 조선영화건설본부였다가, 좌익성향이 짙었던 조선영화동맹의 조선영화사로 옮겨갔고 이후 조선영화사가 점차 반관의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해방뉴스」의 일관된 사상적 성향을 가늠하기 힘들다. 하지만 「해방뉴스」는 해방 직후 조선영화인들의 활동을 재개하게 한 시초이며, 당시 조선의 면면을 기록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1945년 11월 경에는 이재명과 윤상렬 등이 이를 소군정 하의 북한에 소개한 바 있고, 1947년에는 미군정 문교부 예술과의 안철영을 통해 영문판으로 제작되어 재미동포에게 전달되었다. 또한 민중영화주식회사를 통해 재일조선인에게도 보급·상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