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영화
단체
1987년 소형영화인들이 모여 민족영화를 제작, 상영, 배급해 사회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결성한 영화단체.
이칭
이칭
영화제작소 장산곶매
정의
1987년 소형영화인들이 모여 민족영화를 제작, 상영, 배급해 사회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결성한 영화단체.
개설

장산곶매는 1987년 강헌, 이용배, 장윤현, 공수창, 홍기선, 장동홍, 박대영, 이은 등 소형영화인들이 「오! 꿈의 나라」(1988)를 제작하기 위해 창립한 단체이다. 단체 명칭은 황석영의 희곡 「장산곶매」(1980)에서 따온 것이고, “우리 영화문화의 전반적 위기 속에서 진정으로 영화가 수행해야하는 기능, 이 땅 대중의 건강한 삶을 묘사하고 형상화하는 민족영화를 모색하고 실천하고자 공동창작, 공동작업 방식”을 추구했다.

내용

장산곶매는 소형영화의 대중화와 전문화를 시도하면서 그 첫 시도로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오! 꿈의 나라」를 제작했다. 두 번째 영화는 동성금속공장의 민주노조 결성을 둘러싼 노사 간의 충돌을 그린 「파업전야」(1990)였다. 이 작품은 세계노동절 101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한국최초의 노동영화로, 상영금지 처분 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국 11개 지역에서 동시 상영되었다. 상영장에서 최루탄이 터지고 경찰이 투입되는 등의 난관을 겪으면서도 관객 30만 명을 동원해 소형영화, 독립영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마지막 작품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설립과 교육개혁 문제를 다룬 「닫힌 교문을 열며」(1992)이다. 이 영화의 주요 제작자들은 사전심의 거부가 영화법을 위반했다는 혐의(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로 당국의 수배를 받았고, 장산곶매는 1993년 활동을 중단하였다. 그 외 장산곶매가 제작한 영화로는 「그날이 오면」(장동홍, 1987), 「87에서 89로 전진하는 노동자」(1989), 「어머니, 당신의 아들」(1991)이 있다.

의의와 평가

장산곶매는 현실 참여의 영화 제작과 상영을 통해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영화운동의 정점에서 노동영화와 민중영화의 전형을 만들었다.

참고문헌

『한국영화사: 개화기에서 개화기까지』(김미현 외,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장산곶매 제작, 소형장편 노동영화 ‘파업전야’ 전국동시개봉」(『한겨레』1990.3.31)
『「오! 꿈의 나라」자료집』(1989)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www.kmdb.or.kr)
집필자
심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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