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면서 한국영화를 국제적으로 알리려는 목적으로 만든 책자의 제목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영화제에서는 이전의 한국영화와는 다른 서사, 스타일, 주제 등의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으며, 『바람불어 좋은 날』(1980)이 그 신호탄이었고, 이는 ‘리얼리즘 영화의 부활’이라고 명명되었다.
코리안 뉴웨이브는 개별 민족영화로서의 한국영화, 이전 한국영화와는 다른 변화된 영화, 재능있는 신인 감독들의 대거 진출 등을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였지만, 한국영화의 시대 구분에 사용될 정도로 한국영화사 기술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장호 감독을 위시하여 장선우, 박광수 등 당시 젊은 신인감독들의 영화는 눈물을 자아내기 위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서사구조의 신파물이나 스토리의 개연성보다는 격투 장면만을 특화하려는 액션영화, 전통적인 윤리와 관습의 토대 위에 구성되는 멜로나 홈드라마 등으로 기존 한국영화들과의 차별성을 드러내며 등장했다.
이를 의미 규정하고 국제적으로 소개하며 한국영화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 등장한 것이 ‘코리안 뉴웨이브’라는 용어이다.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 영화’ 나 프랑스의 ‘누벨바그’, 일본의 ‘쇼치쿠 누벨바그’, 미국의 ‘뉴 아메리칸 시네마’, 독일의 ‘뉴 저먼 시네마’ 등을 참고로 한 작법이지만, 개별 국가의 영화 역사에서 그러한 시기가 가지는 의미를 평가하고 연구하는 방식을 한국영화에 적용한 것이다.
개별국가의 영화 역사 시기 구분은 일부 예외를 제외한다면 커다란 변혁의 시기를 겪는다. 영화의 내적 연속성이나 자생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예술적, 정치 · 사회적 교류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 중반에 이러한 용어가 만들어지고 유통된 것은 정치적으로는 세계화 담론 때문이었다. 또한 영화계로서는 영화 전문 잡지나 영화제 등 영화 문화의 확장과 한국영화 흥행 호조, 대기업 자본의 유입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한국영화’로서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강조할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한편 영화사 기술에서 변혁의 지점을 만드는 것은 전후의 맥락을 파악하고 사회와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작업이기도 했다. 따라서 의도적인 명명과 의미부여가 있었다고는 해도 1996년에 이전 10여 년의 한국영화를 평가하고 규정한 것은 한국영화사 기술에 상당한 의미와 의의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