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나한상 높이 87~96.5㎝. 나한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는 1677년(숙종 3) 7월 1일 전라북도 부안 능가산 개암사 응진당에 봉안하기 위해 덕희(德輝)와 보윤(寶允)이 발원하고 조각승 경탄(敬坦), 준계(俊戒), 법학(法學), 경삼(敬森)이 석가삼존상을 비롯하여 16나한상 및 권속을 제작한 것으로 적혀 있다.
16나한상은 일반적으로 영산전이나 응진전 등에 봉안되며, 본존 불상 왼쪽에 홀수 번호의 나한상이, 오른쪽에 짝수 번호의 나한상이 벽면을 따라 배치된다. 개암사 응진전 16나한상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원칙을 따르고 있다. 15구의 나한상은 1677년에 조성된 작품이지만, 1구는 새로 제작된 것이다.
나한상은 높이가 87~96.5㎝의 중형으로, 조선 후기 전형적인 나한상의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얼굴의 자연스러운 표정이나 앉아있는 자세 등이 같은 시기에 활동한 색난, 단응, 마일 등이 만든 나한상과 양식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
나한상은 바위 위에 결가부좌하거나 한쪽 무릎을 세운 채로 앉아 있고, 양손을 합장하거나 지물을 들고 있는 등 형태가 다양하다. 나한상은 모두 민머리로, 희고 긴 눈썹은 길게 늘어지고 이마에 잔주름이 표현된 노스님과 눈썹과 수염이 듬성듬성한 젊은 수행자의 모습의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결가부좌한 나한상은 경전, 염주, 사자 등의 지물을 들고 있다. 다만 한 다리를 세우고 양손으로 깍지를 낀 자세와 작대기로 코를 들어 올린 자세 및 싸움을 하듯 손매를 걷어 올린 자세 등은 다른 사찰의 나한상에서는 볼 수 없다.
장삼 위에 걸친 붉은 색의 가사를 끈으로 묶어 가슴부터 하반신까지 자연스럽게 늘어뜨렸다. 가사와 장삼의 옷깃에는 화려한 꽃문양이 묘사되었는데, 근래 들어 나한상에 색을 다시 칠해 오래된 느낌이 사라졌다.
한편 수화승으로 참여한 경탄은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각승이다. 경탄이 수화승으로 만든 불상은 대구 달성 소재사 석조석가여래좌상(1673년), 부안 개암사 나한상(1677년) 등이다. 개암사 나한상 제작에 함께 참여한 준계, 법학, 경삼이 다른 불상을 제작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17세기 중 · 후반에 제작된 기년명(紀年銘) 나한상보다 인상 표현이나 자유로운 자세 등 미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개암사 목조나한상은 제작 시기, 조성 사찰, 조성자 등을 명확히 알 수 있고, 조각승 경탄이 만든 유일한 기년명 나한상이라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서 기준 작품이 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 선운사 영산전에 봉안된 나한상과 얼굴 표정, 자세, 착의법 등이 동일하여 같은 계보의 조각승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