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불상은 높이 70㎝, 무릎 폭 56㎝. 아미타여래좌상 안에서 발견한 조성발원문은 백지묵서(白紙墨書)로, 이에 따르면 1657년(효종 8) 5월부터 6월까지 전북 금산군 덕유산 운수암(雲峀菴)에 봉안하기 위한 극락교주 아미타상을 조각승 승일(勝一), 처영(處英), 도잠(道岑)이 제작하였다. 이 아미타여래좌상이 언제 덕유산 운수암에서 무주 북고사로 이운되었는지 알 수 있는 문헌이 남아있지 않다.
목조여래좌상은 높이가 70㎝인 중형으로, 상체를 곧게 세우고 머리를 앞으로 살짝 내밀고 있다. 머리에는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肉髻)와 뾰족한 나발(螺髮)이 표현되어 있고, 머리 중앙에 반원형의 중간계주(中間髻珠)와 정수리에 윗부분이 둥글고 낮은 원통형의 정상계주(頂上髻珠)가 있다. 원형의 얼굴에 가늘게 뜬 눈은 눈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가고, 코는 콧날이 곧게 뻗었으며, 입은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완만하게 새겨져 있다.
오른쪽 어깨에 걸친 대의(大衣)자락은 목에서 팔뚝까지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나머지 대의자락이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오른쪽 어깨에 걸친 편삼과 대의자락은 복부(腹部)에서 접혀 있고, 하반신에 늘어진 대의 자락은 배에서 완만하게 펼쳐지며 나머지 대의자락도 좌우로 늘어져 있다. 왼쪽 무릎에는 소매 자락이 뾰족하게 늘어져 있다. 대의 안쪽에 입은 승각기(僧脚崎)는 상단을 수평으로 마무리하고 대각선으로 접었다. 불상 뒷면의 대의 처리는 목둘레에 끝단을 두르고, 왼쪽 어깨에 앞에서 넘어온 대의자락이 길게 늘어져 있다. 양손은 무릎 위에 올리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手印)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수인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석가불을 제외한 여래상과 보살상이 취하고 있다.
한편 수화승으로 참여한 승일은 17세기 중반에 전국을 무대로 활동한 조각승으로, 현진(玄眞) 계보에 속한다. 승일이 수화승으로 만든 불상은 경남 밀양 유물관 소장 목조대좌(1634년), 전남 구례 천은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목조대세지보살좌상(1646년), 전남 강진 정수사 목조삼세불좌상(1648년), 서울 봉은사 대웅전 협시 목조여래좌상(1651년), 전북 무주 북고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657년), 경북 경산 용밀사 석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서울 청룡사 봉안, 1660년), 경북 칠곡 송림사 석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1665년), 경북 김천 고방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1670년)이다. 승일이 만든 불상들은 얼굴형이나 이목구비(耳目口鼻)에서 풍기는 인상, 신체 비율, 착의법 등이 시기별로 차이가 많이 난다.
북고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제작 시기, 조성 사찰, 조성자 등을 명확히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서 기준 작품이 될 수 있다. 특히, 17세기 현진 계보의 조각승이 만든 불상의 양식적 변천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