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200.5㎝, 가로 245㎝. 봉은사 대웅전 신중도는 1844년 7월 29일 당시의 지명인 광주군 수도산 봉은사에서 제작되어 봉안된 불화이다. 불화의 증명은 낙암당 정훈(洛巖堂 正訓), 무경당 관주(無鏡堂 觀周), 포운당 윤취(布雲堂 閠聚)가 참여하였다. 증명으로 참여했던 무경당 관주는 화승이지만 직접 제작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금어와 편수로 인원당 체정(仁源堂 体定), 퇴은당 유인(退隱堂 宥仁), 송암당 대원(松巖堂 大園), 월하당 세원(月霞堂 世元) 등 총 12명이 참여하여 조성하였다. 시주자는 6인의 상궁과 일반 서민들로서 조선 말기 상궁들의 활발한 불화 후원 활동을 볼 수 있다. 이 불화는 조선 말기의 신중도 가운데 상당히 큰 편으로, 19세기 중반 서울 · 경기 일대에서 유행하는 신중도 형식을 예고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가로로 넓은 화면에 9곡병풍을 배경으로 신중이 운집해 있는 형태로, 화면의 향좌측에는 범천과 제석천을 중심으로 한 천부, 향우측에는 위태천을 중심으로 한 천룡부를 배치하였다.
범천과 제석천은 네모난 신광을 두르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이마에 제3의 눈이 표현되어 있고 높은 보관을 쓴 인물이 범천이고 제석천은 황금의 보(補)가 달린 옷을 입고 두 손이 옷 속에 가려져 있다. 범천과 제석은 보색의 대비를 이룬 의복에 아름다운 문양과 화려한 금니로 채색하여 그들의 높은 위계를 드러낸다.
범천과 제석천 아래에 위치한 원유관과 경책관을 쓴 일궁천자와 월궁천자가 천자의 위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오른편에는 비파 · 생황 · 대금 · 피리 · 장구 등을 연주하는 주악천녀와 향로를 들고 있는 천녀, 당 · 번을 들고 있는 천녀 및 동자가 그려져 있다.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천녀와 각종 공양구를 들고 있는 천녀와 동자상이 신중도의 중요 등장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중반경의 특징적인 요소로 천상의 공간임을 상징화한 것이다.
화면의 향좌측에는 새 날개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투구를 쓰고 금색의 삼지창을 들고 있는 위태천을 중심으로 여러 신장상이 배치되어 있다. 이들 중 백익선(白翼扇)을 든 산신과 주조신(主竈神: 부엌 신)은 19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도상으로 민간에서 신앙되던 신들이 신중도의 도상으로 차용된 것이다. 그 밖에 용왕(龍王), 주정신(主井神), 그리고 무기를 든 신장들은 천부중의 음영이 없는 얼굴과 달리 짙은 갈색에 부릅뜬 눈과 무성한 턱수염 등 호법신으로서의 특징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또한 권속들의 보관과 옷, 무기, 지물 등에는 금니와 금박을 사용하여 화려한 느낌이다.
화면의 가로 비율이 넓어지면서 존상이 복잡할 정도로 많아지고, 주악천녀가 증가하는 표현은 19세기 후반 경기도와 경상도에서 제작된 신중도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봉은사 대웅전 신중도와 같은 유형의 불화로는 1790년 현등사 지장암 신중도를 비롯하여 남양주 흥국사 신중도(1868년), 서울 사자암 신중도(1880년), 흥국사 신중도(1892년), 서울 미타사 칠성전 신중도(1899년), 진관사 신중도(1910년) 등이 있어 같은 유형의 신중도 초본이 서울 · 경기 일대를 중심으로 공유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범천 · 제석천의 얼굴이나 9곡병풍의 바탕 등에는 채색의 박락이 심하고 신중도 하단부는 습기로 인한 오염이 심하여 화면이 손상되어 있지만, 절제되어 있는 화면 구성과 안정감 있는 인물 표현 등으로 인해 19세기 중반에 조성된 신중도 가운데 우수한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조선 말기에는 상궁들이 중요한 시주 계층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봉은사 대웅전 신중도는 19세기 궁성 주변 경기도 일대의 사찰에서 상궁들에 의해 행해졌던 불사의 한 예로서 중요하다. 또한 9곡병풍을 배경으로 향좌측에 천부와 향우측에 천룡부를 배치한 신중도 초본이 경기도 일대에서 크게 유행하는데, 이 불화는 그 시발점이 되는 작품으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