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봉래사 신중탱화 ( )

회화
유물
국가유산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봉래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신중도.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고흥봉래사신중탱화(高興 蓬來寺 神衆幀畵)
분류
유물/불교회화/탱화/불도
지정기관
전라남도
종목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유산(2005년 03월 27일 지정)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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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봉래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신중도.
개설

2005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16㎝, 가로 69㎝. 봉래사 신중도는 원래 천은사에서 1776년에 민휘(敏徽)와 내숙(來叔)이 제작을 주도하였고, 아미타불도와 삼장불도 제작에는 보조화승으로 참여하였다. 현재는 전라남도 고흥 봉래사에 봉안되어 있다. 고흥 봉래사 신중탱화는 제석과 범천이 결합된 천부와 5명의 신장이 표현된 천룡부가 결합된 신중도로 18세기 후반의 다른 신중도와는 달리 천룡부의 주존으로 위태천이 정착되기 이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용

화면의 구성은 제석 · 범천이 중심이 된 천부와 천룡부가 상하로 결합된 형태이다. 상단에는 제석천과 범천을 중심으로 일월천자가 시립하고 천동과 천녀의 형상이 묘사되어 있다. 이마에 제3의 눈이 표현되어 있고 높은 보관을 쓴 인물이 범천이다. 하단에는 대표 무장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2위씩의 신장상이 용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18세기 후반 이후에는 신중도에서 천룡부의 주존이 위태천으로 정착되는데, 고흥 봉래사 신중탱화의 천룡부에 표현된 대표 신장상은 칼을 들고 갑옷을 입은 채 위협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위태천은 아니어서 18세기 후반 다른 신중도에 비해 비교적 고식적인 전통을 따르고 있다.

신중도를 조성한 민휘는 전라도 일대에서 우수한 불화의 화적을 남긴 화연(華連)의 제자로서, 함께 조성하였던 천은사 아미타불도와 삼장불도는 18세기 후반 화풍상으로나 도상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작품들이다. 봉래사 신중탱화는 이후 1807년 선운사 신중도 제작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상단에 위치한 제석 · 범천과 일월천자의 형상과 배치를 통해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고흥 봉래사 신중탱화는 18세기 중반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화연(華連)의 제자였던 민휘의 작품이다. 민휘는 1776년 천은사 불화 불사 때 다른 불화 작업에서는 보조화승으로 참여하였지만 신중도를 제작할 때는 내숙과 함께 독자적으로 작업하였다. 도상의 선택과 화면의 구성 및 채색이 안정적이어서 상당한 기량이 있는 화승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후 인근 사찰의 신중도 도상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한국역대서화가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성보문화재연구원, 2011)
『한국역대서화가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조선후기 신중탱화 도상의 연구」(이승희, 『미술사학연구』228·229, 한국미술사학회, 2001)
집필자
이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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