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면 바탕에 채색. 세로 628㎝, 가로 381㎝. 경기도 고양 흥국사에 봉안된 야외의식용 대형 불화인 괘불도(掛佛圖)이다. 1902년 고종(高宗)의 후궁인 순비(淳妃) 엄씨(嚴氏)가 발원하고 왕실이 시주자가 되었다. 순비 엄씨는 상궁으로 궁궐에 입궁하여 황귀비(皇貴妃)의 지위에 오른 입지적인 인물로 조선 말기 많은 불사를 후원하였다.
괘불도의 도상(圖像)은 서방 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불과 협시보살인 관음 · 대세지보살, 가섭 · 아난존자와 문수 · 보현보살의 7존상을 그린 아미타괘불로 당시의 불교 신앙이 반영되었다. 불화 제작은 19세기 중반~20세기 초반까지 근기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친 경선 응석(慶船 應釋)과 12명의 화승(畫僧)들이 담당하였다.
아미타불과 관음 · 대세지보살의 아미타삼존을 화면 중심에 크게 배치하였고 가섭과 아난존자를 화면 중반 아래쪽에 작게 배치하였다. 그리고 화면 하단에 청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보살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을 동자형의 모습으로 그렸다.
주존인 아미타불은 오른손을 길게 내려 극락에 왕생(往生)하는 자를 맞아들이는 내영인(來迎印)의 수인(手印)을,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을 결하였다. 관음보살은 보관에 화불(化佛)이 그려져 있고 손에는 모란꽃을 들었다. 관음보살의 목 아래쪽으로 모란꽃과 연꽃을 교대로 배치한 장식의대(裝飾衣帶)가 내려와 화려한 느낌을 준다. 한편 대세지보살은 정병이 표현된 보관을 쓰고 연꽃을 들었다. 삼존의 배치에서 관음과 세지보살의 상체가 주존인 아미타불의 양팔을 가림으로써 주존이 뒤쪽에 배치된 것 같은 효과를 주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삼존불의 중간쯤에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삼존보다 작게 그려졌는데 가섭은 노비구의 모습으로 두 검지를 맞대고 있고 아난존자는 젊은 승려형의 모습으로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하고 있다. 화면 하단에는 동자형으로 그린 문수보살이 연꽃을 들고 청사자를 타고 있으며 보현보살은 흰 코끼리를 타고 앉아 여의(如意)를 들었다.
괘불의 채색은 붉은색, 밝은 녹색, 짙은 남색을 중심으로 노란색과 황토색도 함께 사용되었다. 아미타불과 관음 · 세지보살의 상호(相好)는 노란색으로 채색하였고, 하단부의 구름은 황토색의 음영을 주어 표현하였다. 하늘로 뻗어가는 채운(彩雲)과 하단의 음영으로 더욱 장식성을 가미한 구름 표현은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흥국사 괘불의 도상은 아미타삼존을 중심으로 가섭과 아난존자, 문수 · 보현이 등장하는 아미타칠존도이다. 19세기 말 서울과 경기 지역에는 아미타 정토신앙의 유행으로 아미타괘불이 성행하게 되었다. 석가모니불의 제자인 가섭과 아난존자, 문수와 보현보살은 주존불의 도상과 관계없이 아미타계 불화에 삽입되었으며 문수와 보현보살은 머리를 두 갈래로 묶은 동자형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아미타불이 오른손을 길게 내려 내영인(來迎印)을 취하고 왼손은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을 취하고 있는 도상은 1853년 삼각산 내원암에서 중봉 혜호(中峰 慧皓)가 판각하여 간행된 『아미타경요해(阿彌陀經要解)』의 권두(卷頭) 변상에서 같은 모습이 표현되어 있어 이 도상의 전거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아미타칠존을 묘사한 아미타괘불은 고양 흥국사 괘불을 비롯하여 20세기 초반 이후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다수 조성되어 이 시기 아미타괘불의 전형적인 도상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고양 흥국사 괘불의 바탕천으로는 면(綿)이 사용되었다. 화면 양쪽에 30㎝ 가량의 면과 그 안쪽에 103㎝의 면 세 폭을 잇댄 총 5폭으로 불화의 바탕을 마련하였다. 특히 이 불화에서는 수입산 면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개항 이후 구매력있는 왕실이나 경제적 상류층 등이 수입산 면제품을 구매하여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불화의 제작은 수화승(首畫僧)인 경선 응석을 비롯하여 허곡 긍순(虛谷 亘淳), 보암 긍법(普庵 肯法), 범화 윤익(梵華 潤益), 설호 재오(雪湖 在悟), 동운 영욱(東雲 靈昱), 두흠(斗欽), 성규(聖奎), 경조(敬照), 오화(五禾), 종예(宗芸), 사미인 행언(幸彦)이 참여하였다. 특히 수화승인 경선 응석은 서울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70여 점의 많은 불화를 남긴 근대기 대표적인 불화승이다. 그가 조성한 불화의 특징은 원색의 짙은 남색, 붉은색, 녹색의 색채 대비가 두드러지며 서양화법의 특징 중 하나인 음영법을 구름 등 일부에 사용하였는데 이 불화에서도 이러한 요소가 엿보인다.
불화의 발원자는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의 후궁인 순비 엄씨로 여겨진다. 불화 화기에는 순비 엄씨가 이 괘불을 발원했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 않지만 고종, 그리고 황태자 내외, 아들 영친왕(英親王)과 자신의 안녕을 위한 축원 내용이 있어 엄비가 발원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축원 내용은 당시 순비 엄씨가 발원한 다른 괘불들에서도 나타난다. 더욱이 고양 흥국사에서 이 괘불 조성이 끝나고 엄씨의 후원으로 영친왕의 안녕을 위한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가 이루어졌다. 만열염불회는 서방 극락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기원하는 의식이다.
20세기 초반 역사와 정치의 격변기에 사회적 불안함과 생명에 대한 위협을 극복하기 위하여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를 염원했던 당대의 불교 신앙이 반영되어 있다. 발원자인 순비 엄씨는 궁궐 내명부 최고의 지위를 지닌 왕실 여성으로 당시 불교계의 최대 후원자였다. 또한 이 불화를 제작한 경선 응석은 근대기 서울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왕실 발원 불화를 비롯한 수많은 불화 제작에 참여하고 동시기 다른 화승에게 영량력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이 불화는 20세기 초반 왕실발원 불화의 대표하는 괘불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