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관복본 크기는 세로 150.5㎝, 가로 87㎝, 유복본 크기는 세로 81㎝, 가로 60.5㎝. 이인엽의 자는 계장(季章), 호는 회와(晦窩)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좌의정 이경억의 아들로 1686년(숙종 22) 정시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홍문관 대제학까지 지냈다. 이인엽의 영정은 모두 4점이 전한다. 이 가운데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관복본 전신상 1점과 유복본(儒服本) 반신상 1점이다. 복식은 다르지만 얼굴의 형태는 거의 차이가 없다. 하나의 모본을 두고서 여러 점을 베껴 그린 초상화로 추측된다.
관복본은 사모에 아청색 단령(團領)을 입고 의자에 앉은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이다. 두 손은 길게 늘어진 소매 안에서 맞잡았다. 흉배는 정2품의 쌍학흉배(雙鶴胸背)와 삽금대(鈒金帶)를 갖추었고, 의자에는 호랑이 가죽이 깔렸다. 녹색조가 강한 단령은 구름무늬를 정교하게 그렸으나 신체의 굴곡은 입체감이 전혀 없는 평면적인 경향이 강하다. 얼굴은 좌안팔분면의 방향이며 세선(細線)으로 이목구비의 윤곽을 잡고 채색하였다. 눈가의 쌍꺼풀과 주름 등에 음영을 넣은 점은 부분적이지만 서양화법의 반영을 말해주는 특징이다. 그림 오른쪽 위에 ‘監賑御使李公寅燁(감진어사이공인엽)’이라 적혀 있다. 이인엽은 42세 때인 1697년(숙종 23) 평안도의 기근을 살피기 위해 감진어사로 파견된 적이 있다.
유복본(儒服本) 반신상은 방건(方巾)에 직령포(直領袍)를 갖추었고, 허리에는 당상관용인 홍색의 세조대(細條帶)를 매었다. 얼굴의 형태와 표정은 전신상과 거의 같지만, 조금 더 섬세하며 붉은 음영이 약간 들어간 차이가 있다. 관복본과 마찬가지로 수염과 구렛나루의 세밀한 묘사는 그림에 활기를 더해준다. 좌측 상단에는 별지에 ‘大提學晦窩李先生像(대제학회와이선생상)’이라 써서 붙였다. 이인엽은 숙종 33년(1707) 52세 때 대제학에 임명되었다.
이인엽 영정에는 1700년을 전후하여 나타난 음영법 등 새로운 화법과 전통적인 초상양식이 절충된 과도기적인 특징을 보이는 사례이다. 18세기 이전의 초상화가 지닌 모정(帽頂)이 높은 사모, 선묘에 의한 얼굴의 형태 묘사, 바닥에 채전(彩氈)을 그리지 않은 점 등이 주요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