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강민첨은 본관이 진주(晉州)이며, 진주강씨 은열공파(殷烈公派)의 시조이다. 고려 목종(穆宗) 연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012년(현종 3) 침략한 동여진족을 격퇴하였고, 1018년(현종 9)에는 거란의 10만 군사가 침입하자 강감찬 장군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흥화진에서 거란군을 대파하였다. 이 공로로 추성치리익대공신(推誠致理翊戴功臣)에 녹훈되었다. 사후 태자태부에 추증되었으며 문종 때 공신각(功臣閣)에 초상화를 봉안하였다. 강민첨의 초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보물, 1975년 지정), 진주 은열사(殷烈寺), 하동 두방영당(斗芳影堂), 진주 산앙사(山仰祠), 김천 숙청각(肅淸閣) 등에 소장되어 있다.
강민첨의 초상은 고려 문종 때 공신각에 모셔질 때 최초로 그려졌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강민첨 초상(보물, 1975년 지정)은 1788년(정조 12) 진주병사(晉州兵使)로 재직하던 이연필(李延弼)이 화사 박춘빈(朴春彬)을 시켜 이모하게 한 것이다. 복두(㡤頭)에 소매가 넓고 깃이 둥근 곡령(曲領)을 입었으며, 양손에 홀(笏)을 쥔 모습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백관의 차림이다. 단정할 수 없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이 강민첨 초상의 고려시대 원본을 어느 정도 반영한 후대의 이모본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초상화와 달리 오른쪽 얼굴 면을 향한 것은 고려시대 말기 초상화와 공신도상의 양식임을 시사한다. 진주 은열사에 소장된 강민첨 초상은 의좌상(椅坐像)이지만, 상반신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과 닮은 부분이 많다. 따라서 은열사 소장본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과 같은 도상을 이모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의자에 호피를 걸친 부분은 18세기 초상화의 형식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은열사 소장 강민첨 초상은 사례가 드문 고려시대 인물의 초상화 이모본으로서 고려시대 복식을 갖춘 점은 고증에 신빙성을 제공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을 모본으로 하여 상반신을 이모한 뒤, 의좌상(椅坐像)의 형태로 전신상을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이모를 통해 전승되어온 고려시대 초상화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