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이상의의 고손자인 근재(謹齋) 이관휴(李觀休)가 1735년(영조 11) 이상의의 외손(外孫) 후예인 윤덕희에게 부탁하여 이상의의 영정을 모사하게 하였다. 이관휴는 이 영정을 이상의의 간찰을 모아서 만든 『소릉간첩(少陵簡帖)』 앞에 붙여놓았는데, 지금까지 그 상태로 전하고 있다.
이상의는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호종한 공으로 1613년(광해군 5) 위성공신(衛聖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이상의의 영정은 종이에 그린 한 점과 『소릉간첩』에 수록된 비단에 그린 한 점이 전한다. 비단에 그린 것은 1735년(영조 11)에 윤덕희가 모사한 것이고, 종이에 그린 것은 모사할 때 모본으로 삼은 위성공신상의 초본으로 추정된다.
화면 위쪽에 윤덕희가 직접 “少陵李先生遺像(소릉이선생유상)”이라는 표제를 썼다. 그 오른 쪽 위의 여백에는 “을묘년(1735)에 외손의 후예 윤덕희가 축소하여 삼가 모사하다(乙卯外後孫尹德熙縮小敬摹)”라고 세로로 쓴 뒤 “德熙(덕희)”라는 인장을 찍었다. 주인공과 작가, 제작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축소하여 베껴 그리는 것은 눈으로 원본을 보면서 크기를 줄여 그린 것으로 뛰어난 소묘력을 필요로 한다.
『소릉간첩』에 실린 이상의의 영정은 얼굴이 회색톤으로 변색되어 있다. 윤덕희는 공신상의 초본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단령(團領) 전체를 암록색으로 단조롭게 처리하였다. 사모의 높이가 낮고, 단령은 실제의 투시에 맞게 바꾸어 그린 새로운 경향을 나타냈다. 비단에 그렸기 때문에 얼굴과 단령 속에 입은 직령에 흰색 연백(鉛白)을 배채(背彩)하여 전문적인 화법을 발휘하였다. 얼굴의 튀어나온 부위는 밝게 채색하고, 오목한 부위는 어둡게 처리하는 18세기 초의 새로운 음영법도 적용하였다.
17세기 초 초상화 초본을 18세기 초에 이모한 이상의 영정에는 이모 당시에 유행한 새로운 화법들이 부분적으로 들어가 있다. 광해군대 공신도상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며, 17세기 초 위성공신상의 초본을 이모한 유일본으로서 희소성이 큰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