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15.5㎝, 가로 71.2㎝. 1629년 6월, 숭례문 앞의 남지(南池)에서 연꽃을 감상하고자 나이 많은 전 · 현직 관료들이 모임을 가진 뒤, 이를 기념하여 그린 것이 「남지기로회도」이다. 이 「남지기로회도」는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 이기룡(李起龍)이 그렸으며,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본이 당시에 그린 원본으로 추정된다.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본은 조선 후기에 원본 혹은 이모본을 모본으로 하여 베껴 그린 것이다. 상단에 ‘南池耆老會(남지기로회)’라는 표제에서 시작하여 아래에 그림, 축하 글, 그리고 참석자들의 명단을 적은 좌목(座目)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지기로회도」에 그려진 가옥은 이 모임의 일원인 홍사효(洪思斅)의 집이며, 남지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실내에는 12명의 노인들이 둘러 앉아 조촐한 주찬(酒饌)을 즐기고 있다. 여기에 참석한 자들은 가장 연장자인 81세의 이인기(李麟奇)를 비롯한 11명이다. 모임의 일원인 유순익(柳舜翼)은 공무로 인해 이날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림에는 그려 넣어 12명이 그려졌다. 그림 속 가옥의 왼편에는 아버지를 모시고 온 자제들이 앉았고, 오른편은 술과 음식을 장만하는 공간이다. 그 아래로는 연지와 버드나무, 그리고 성곽의 일부와 함께 숭례문(崇禮門)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이날의 모임에 참석한 기로들은 12본의 「남지기로회도」를 만들어 하나씩 나누어 가졌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잃어버리거나 망실되기도 했다. 이 경우에는 후손들이 다른 집안에 소장된 원본을 베껴 그린 이모본을 만들어 가보(家寶)로 전하게 하였다. 현재 다양한 화풍의 이모본들이 전하는 데, 이모본은 화가의 기량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동아대학교박물관의 「남지기로회도」는 정방형의 화면이지만, 기본적인 구성은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본을 따랐다. 건물 지붕의 기왓골을 그린 선묘의 방향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등 19세기 이모본들과 같은 특징을 취하였다. 건축물의 표현에서 투시법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단서이다. 또한 버드나무 두 그루의 크기가 다른 소장처의 이모본과 큰 차이를 보일 만큼 불균형을 이룬 점, 연지의 윤곽에 평행사선투시(平行斜線透視)가 적용된 점, 그리고 화면에 여백이 많이 비어 있는 점 등은 다른 이모본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현재 남지기로회도는 원본과 이모본(移模本)을 합쳐 모두 8점 정도가 전한다. 대부분이 이 모임에 참석한 기로들의 후손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들이다. 동아대학교박물관 본은 건물과 인물의 묘사에서 18세기 이후에나 가능한 화법이 나타나 있다. 합리적인 투시법이 적용된 지붕의 기왓골 묘사, 인물의 의습선에 나타난 명암법 등으로 볼 때 조선 후기에 이모한 본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