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98.5㎝ , 가로 76.8㎝. 「희경루방회도」는 족자로 꾸며져 있으며, 위쪽부터 표제·그림·좌목·발문의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는 전서체로 ‘喜慶樓榜會圖(희경루방회도)’라고 썼고, 그림은 연회가 펼쳐지는 희경루와 그 주변의 공간을 그렸다. 좌목에는 다섯 사람의 인적사항을 품계·관직·이름·자·본관 순으로 기록하였다. 좌목의 아래쪽에는 모임을 갖게 된 경위를 초서체로 썼다. 이 글을 통해 이들의 모임에 관한 자세한 사실을 알 수 있다.
「희경루방회도」에 그려진 누정은 전라도 광주의 객관(客館)에 속한 희경루이다. 참석자들은 광주목사 최응룡(崔應龍), 전라도관찰사 강섬(姜暹), 전승문원부정자 임복(林復), 전라도병마우후 유극공(劉克恭), 낙안군수 남효용(南效容) 등 5인이다. 이들은 모두 전라도 광주 인근에서 근무하거나 이 지역에 연고가 있는 동기생들이다. 이들 가운데 최응룡·임복·강섬은 1546년(명종1) 증광시의 문과 합격자들이고, 유극공과 남효용은 무과에 합격한 자들이다. 화면 아래의 발문은 최응룡이 썼는데, 1546년의 과거시험에 함께 합격한 이후 20년만의 만남을 회고하고 자축하는 내용이다.
동기생들이 앉은 자리를 보면, 전라도관찰사 강섬의 관직이 가장 높지만, 광주목사 최응룡이 상석(上席)에 앉았다. 최응룡이 과시에서 장원(壯元)을 했기에 장원급제자를 예우하기 위한 것이었다. 연회 장면에는 36명이나 되는 기녀들이 누정에 올라와 연주와 무용 및 시중드는 모습이 다채롭게 그려져 있다.
희경루와 누정을 둘러싼 담장을 비교해 보면, 바깥담은 오른 쪽에서 바라본 사선투시가 적용되었으나 누정에는 정면관을 적용하였다. 화면 전체에 상이한 시점이 교차하는 불합리한 투시가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는 하나의 화면에 투시법과 원근 관계가 합리적으로 적용되지 못한 16세기 계회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누정 뒤편 원산(遠山)에는 16세기에 새롭게 수용된 절파화풍(浙派畵風)의 단서가 보인다.
「희경루방회도」는 전라도 광주의 지방화가가 그린 지방양식의 계회도로서 희소성이 매우 높은 사례이다. 계회의 관행 뿐 아니라 계회도 또한 지방으로 확산되어 다채롭게 그려진 경향을 「희경루방회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