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빈흥록 ()

조선시대사
문헌
1794년에, 제주도에서 시행한 빈흥과의 방목과 시권을 엮은 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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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794년에, 제주도에서 시행한 빈흥과의 방목과 시권을 엮은 과문집.
개설

정조가 지방의 인재 양성을 추진하며 전국적으로 시행한 빈흥과 과거시험 중 1793년(정조 17) 제주도에서 시행한 과거 시험의 방목과 우수 답안지를 엮어 간행한 책이다. 1권으로 구성된 인쇄본으로 간행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정조는 즉위 후 규장각에서 초계문신을 양성하여 인재 양성의 성과를 거두자 그 범위를 확대하고자 하였다. 이에 1790년대에 들어 서울과 지방의 인재를 양성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중앙에서는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을 강경(講經)과 제술(製述)을 통해 양성하였고, 선발 과정을 직접 정조가 주관하였다. 1792년(정조 16) 정조는 인재 양성의 범위를 전국의 유생으로 확대하였다. 지방별로 유생을 선발하는 빈흥과(賓興科)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선발 과정을 정리하고 우수 답안지를 수록한 『빈흥록(賓興錄)』을 간행하였다.

내용

‘빈흥’이란 중국 주나라의 인재선발 제도에서 나온 것으로 우수한 인재를 천거하여 등용한다는 말이었다. 빈흥과의 과목은 강경과 제술로 구분되는데, 강경은 일부 지역에서만 시행되었고, 지방 유생은 주로 제술을 통해 선발되었다. 그리고 정조는 문제를 출제하고 답안지를 채점하여 최종 합격자를 선정하는 과정을 모두 주관하였다. 정조가 출제한 문제를 가지고 현지로 파견된 중앙 관리나 한양에서의 2차 시험 감독관은 주로 규장각신과 초계문신 출신 관리가 담당하였다.

정조대에는 총 6종의 『빈흥록』이 편찬되었다. 영남 유생을 대상으로 한 『교남빈흥록(嶠南賓興錄)』(1793), 강원 유생을 대상으로 한 『관동빈흥록(關東賓興錄)』(1793), 영흥·함흥 유생을 대상으로 한 『풍패빈흥록(豊沛賓興錄)』(1795), 함경 유생의 『관북빈흥록(關北賓興錄)』(1800), 평안도 유생을 대상으로 한 『관서빈흥록(關西賓興錄)』(1800), 그리고 제주 유생을 대상으로 한 『탐라빈흥록(耽羅賓興錄)』(1794)이 그것이다.

『탐라빈흥록』은 1793년(정조 17) 제주도에서 시행된 빈흥과를 그 내용으로 한다. 정조는 1793년(정조 17) 겨울, 제주도에 어사 심낙수(沈樂洙)를 보내어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옥사를 다스릴 것, 괴로운 부역(賦役)을 혁파하고 인재를 예방(禮訪)할 것, 고령자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문무과 시험을 치를 것을 명하였다. 이때 유생들에게는 어제(御題)로 논(論)·책(策)·시(詩)·부(賦)·명(銘)·송(頌)의 여섯 가지 문제 형식이 내려졌다. 시권이 올라온 후 등수를 매기도록 하여 논에서 6명, 책과 시에서 각각 3명, 부에서 7명, 명과 송에서 각각 4인을 선발하였고, 각 문체의 우수한 자 7명에게 급제를 내렸으며, 나머지 유생들은 포상하였다. 그리고 규장각에 명하여 문무시의 방목과 1등의 시권을 가져오게 하고, 교서와 신하들의 논의된 내용들을 기록하여 인쇄하여 반포하도록 하였다.

『탐라빈흥록』의 내용은 심낙수가 제주로 어사의 직임으로 내려가게 된 이유와 과정, 빈흥과를 시행하는 경과를 서술하였고, 어제로 내려진 논·책·시·부·명·송의 여섯 가지 문체와 답안지, 우수자의 명단과 합격자 명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정조대 지방 인재를 선발하는 과정과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또한 과거시험의 시행과정을 파악할 수 있고, 지방의 흥학의 실태를 파악하는 자료로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홍재전서(弘齋全書)』
『역해 탐라빈흥록』(제주교육박물관, 2013)
『규장각: 그 역사와 문화의 재발견』(김문식 외,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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