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0년(인조 18)에 도곡(道谷) 안정(安侹, 1574∼1636)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1950년에 별사(別祠)를 복설하여 매년 음력 3월 10일에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안정은 본관이 광주로 함안군 도음리에서 태어나 1599년(선조 32) 고조·증조·조부 등의 선영이 있는 칠원현 배영리(拜榮里)로 이거하였다. 1602년에 도곡정사(道谷精舍)를 짓고 1604년(선조 37)에는 한강(寒岡) 정구(鄭逑)를 배알한 이후 17년 동안 그의 문하를 출입하며 수학하였다. 여헌 장현광(張顯光), 망우당 곽재우(郭再祐), 간송 조임도(趙任道) 등과 교유하며 『가례부해(家禮附解)』 등의 저술을 남겼다. 문집으로 『도곡집(道谷集)』이 있다.
1636년(인조 14) 5월 6일에 지경재(持敬齋)에서 별세하자, 상포(上浦) 신준리(新遵里)의 선영에 장사지내고, 칠원현 영동(榮洞)에 태양서원을 건립하여 위판을 봉안하였다. 훗날 조봉대부동몽교관(朝奉大夫童蒙敎官)에 추증되었다. 이원조(李源祚)가 묘갈명을, 유심춘(柳尋春)이 행장을, 9세손 안기원(安冀遠)이 가장(家狀)을 지었다.
『도곡집』은 1904년 7월에 간행되었다. 성호 이익, 면우 곽종석, 성재 허전 등이 서문을 지었으며, 「태양서원강당상량문(泰陽書院講堂上樑文)」과 「태양서원사우상량문(泰陽書院祠宇上樑文)」, 태양서원 봉안문과 축문 등이 모두 『도곡집』 부록에 수록되어 있다. 강당 상량문은 8세손 안효겸(安孝謙)이, 사우 상량문은 이원조(李源祚)가, 봉안문과 축문은 유치명(柳致明)이 지었다.
선영을 계기로 함안 도음리에서 칠원으로 이거하여 정착하면서 집성촌을 이루기까지 칠원지역 광주안씨 문중의 성장 과정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