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소류(禪源遡流)』는 19세기 조계종의 승려였던 설두 유형이 쓴 책으로 백파 긍선이 『선문수경』에서 제기한 삼종선(三種禪)설을 계승한 책이다. 1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조사선(祖師禪) · 여래선(如來禪) · 의리선(義理禪) · 격외선(格外禪) · 임제삼구(臨濟三句) · 삼처전심(三處傳心) · 살활도(殺活刀) · 진귀조사(眞歸祖師) 등의 개념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선 논쟁에서 제기된 여러 문제점들을 정리하였다. 설두 유형은 삼종선에서 조사선을 최고 우위에 두고, 종파에서는 임제종(臨濟宗)을 최상으로 하는 백파 긍선의 사상을 계승하였다.
백파 긍선의 『선문수경』이 간행된 후, 초의 의순(草衣意恂, 17861866)은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를 짓고, 우담 홍기(優曇洪基, 18221881)는 『선문증정록(禪門證正錄)』을 지어 긍선의 견해를 반박하였다. 긍선의 문손인 설두 유형은 의순과 홍기의 견해에 대응해 긍선을 옹호하기 위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다.
환옹 환진(幻翁喚眞, 1824~1904)이 쓴 발문에 의하면, 『선원소류』는 설두 유형이 회편(會編)한 『회편선문염송집설화(會編禪門拈頌集說話)』 3권과 함께 1889년 경기도 양주 봉인사에서 목활자로 간행되었다. 책의 마지막 시주질(施主秩)에 적힌 "택자(擇字) 문학주(文學周), 김완식(金完植), 김동석(金東錫)"이라는 기록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19세기 후반에 성행했던 민간 목활자를 이용해 간행되었다.
조선 후기에 백파 긍선은 『선문수경』을 지었다. 긍선은 그 책에서 선(禪)을 조사선 · 여래선 · 의리선이라는 삼종선으로 나누고, 조사선-여래선-의리선의 순으로 선의 우열을 정하였다. 나아가 그는 조사선과 여래선을 격외선(格外禪)으로 정리함으로써 조사선과 여래선을 의리선보다 뛰어난 선으로 간주하였다. 또 이 삼종선을 종파에 배당하여 조사선은 임제종과 운문종(雲門宗)에, 여래선은 조동종(曹洞宗) · 위앙종(潙仰宗) · 법안종(法眼宗)에 각각 배당하였다. 긍선이 제시한 이러한 견해는 선의 전통적 견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의 의순은 이러한 긍선의 견해를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를 저술하여 반박하였다. 의순은 “선의 기준은 언구(言句)를 사용하는가 사용하지 않는가에 있기 때문에, 언구를 사용하는 의리선은 여래선에 포함되어야 한다”라고 하며, 조사선과 여래선이라는 이종선(二種禪)을 주장하였다. 나아가 그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종파 간의 우열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의순의 주장은 역사적이고 실증적인 견지에 입각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 벌어진 선 논쟁에서 백파 긍선의 문손인 설두 유형은 『선원소류』를 저술하여 긍선을 비판한 의순과 홍기의 주장을 반박하고 긍선을 옹호하였다. 유형은 먼저 의순의 『선문사변만어』에 대해 “뜻은 비록 막혀 있지만 글의 내용이 뛰어나서 사람들이 애독한다”라고 일정한 평가를 한 반면, 홍기의 『선문증정록』에 대해서는 “내용이 빠진 것이 많고 글도 뒤엉켜서 뜻을 취할 것이 없다”라고 혹평하였다.
설두 유형은 긍선의 삼종선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종파 간의 우열도 인정하였다. 그는 임제종을 가장 뛰어난 것으로 보고 조사선에 배당하였으며, 하택종(荷澤宗)은 지해(知解)에 막힌 의리선으로 보아 가장 낮은 단계로 취급하였다.
설두 유형의 주장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화엄의 사종법계관(四種法界觀)을 삼종선의 각각에 배당한 것이다. 즉 의리선에 사(事) · 리(理) · 이사중(理事中)을 배당하고, 여래선에 이무애법계(理無碍法界) · 사무애법계(事無碍法界) ·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 이사쌍망(理事雙忘)을 배당하였으며, 조사선에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를 배당하였다. 이는 교학인 화엄의 법계관(法界觀)을 선의 기준으로 삼은 것으로 주목할 만한 것이다.
『선원소류』는 조선 후기에 진행된 선 논쟁의 일부를 이루는 책이다. 또한 조선시대 강학의 전통을 보여주는 문헌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화엄의 사법계관(四法界觀)으로 선을 판단하고 해석한 점은 독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