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격(風格)은 일정한 특성을 지닌 한 인물, 인물군, 한 시대의 특징적 기운 또는 작품의 한 구, 한 작품, 작품군 나아가 문학, 예술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그것을 드러내는 일정한 방식을 지칭한다. 고려시대 최자(崔滋)는 21종과 34종의 시평어(詩評語)를 제시하여 시의 특징을 범주화·체계화하였고, 아울러 ‘기(氣)·골(骨)·의(意)·사(辭)’ 등 시와 문을 비평하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조선시대 율곡 이이는 시선집 『정언묘선(精言玅選)』을 통해 8풍격을 제시함으로써 시의 본원(本源)과 올바른 시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풍격은 근대기에 서양 문학과 그 문학이론의 수용으로 점차 자취를 감추었지만 오늘날 이를 통해 근대문학의 미적 특질을 밝히는 시도도 있다.
최자 이전에도 시평어로써 시를 평한 이들이 있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시의 특성을 범주화하여 체계적으로 풍격을 논한 이는 고려의 최자가 처음이다. 최자는 『보한집(補閑集)』에서 2번에 걸쳐 평어(評語)를 제시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2자로 된 21종의 평어를, 또 한편으로는 시를 상(上)·차(次)·병(病) 3종으로 나누고 그 아래 34종(상: 10종, 차: 16종, 병: 8종)의 2자로 된 평어를 제시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평어만 제시하였을 뿐이나, 전자의 경우는 각 평어에 해당하는 예시(例詩)를 들고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최자 이후에 체계적으로 평어를 제시한 이가 이이이다. 이이가 제시한 용어를 최자의 평어와 비교해 보면 그 연관관계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이는 중국인들의 풍격론을 참조하여 자신이 새로 만들어 낸 듯하다. 중국의 대표적인 시평집으로는 양(梁)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彫龍)』, 당(唐) 승려 교연(皎然)의 『시식(詩式)』, 당말(唐末) 사공도(司空圖)의 『24시품(二十四詩品)』, 송(宋) 엄우(嚴羽)의 『창랑시화(滄浪詩話)』, 원(元) 양재(楊載)의 『시법가수(詩法家數)』 등이 있으나, 이 중에서 이이가 제시한 풍격과 일치하는 것은 ‘충담(冲淡)’ 하나뿐이다. 그러나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소산충담(蕭散冲淡)’이라는 평어를 사용한 예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이는 주자의 용어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이이 이후에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의 『호곡시화(壺谷詩話)』(1680)와 『호곡만필(壺谷漫筆)』(1689), 현묵자(玄黙子) 홍만종(洪萬宗)의 『소화시평(小華詩評)』(1673) 등 조선의 시화집(詩話集) 속에서 ‘청신(淸新)’, ‘청건(淸健)’, ‘용의정심(用意精深)’ 등과 그 외 다양한 평어가 사용되었다.
고전 문학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의 풍격은 근대기에 서양 문학과 서양의 문학이론을 수용함으로써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풍격은 한 인물, 한 집단, 한 시대의 인물들의 특징과, 매화 등 사물의 특징을 나타낸다. 시·소설·연극 등 시문과 산문의 다양한 예술 작품의 특징을 드러내는 데 사용되었으며, 시를 보더라도 시 한 구, 시 한 편, 한 인물의 시 전체의 미적 특질을 나타내기도 한다.
최자는 『보한집』(권 하, 1)에서 평어 21종을 들고 있으니, ‘신경(新警), 함축(含蓄), 완려(婉麗), 청초(淸峭), 준장(俊壯), 부귀(富貴), 정채(精彩), 표일(飄逸), 청원(淸遠), 기교(奇巧), 지우(志寓), 우유(優游), 감회(感懷), 호이(豪易), 청사(淸駛), 유박(幽博), 명미(明媚), 상활(爽豁), 화염(華艶), 교장(佼壯), 장려(壯麗)’ 등으로 각각의 평어 뒤에 1~5편의 예시(例詩)를 들고 있다. 예를 들어 ‘명미’란 평어에 김한림(金翰林)과 문순공(文順公)의 시를 소개하고는 “이 두 연(聯)은 뼈대[骨]는 한 가지이나 앞의 연은 그 기상[氣]이 표연(飄然)하다.”고 하고, ‘화염’이란 평어에서 “이 다섯 연은 모두 뼈대는 한 가지이나 ‘옷에 가득한 꽃그림자(滿衣花影)’라고 한 어구의 격조가 더욱 낫다.”고 하였으며, ‘교장’이란 평어에서 “이 다섯 연은 모두 뼈대는 한 가지이나 문열공에게 올린 세 연이 가장 청웅(淸雄)하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최자는 일정한 기준에 의해 각 평어를 범주화하고 그 안에서 또 다양한 용어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최자는 『보한집』(권 하, 13)에서 시를 평하는 34종의 평어를 상(上), 차(次), 병(病)으로 나누어 제시했다. 상에는 신기(新奇), 절묘(絶妙), 일월(逸越), 함축(含蓄), 험괴(險怪), 준매(俊邁), 호장(豪壯), 부귀(富貴), 웅심(雄深), 고아(古雅) 등 10개의 평어를, 차에는 정준(精雋), 주긴(遒緊), 상활(爽豁), 청초(淸峭), 표일(飄逸), 경직(勁直), 굉섬(宏贍), 화유(和裕), 병환(炳煥), 격절(激切), 평담(平淡), 고막(高邈), 우한(優閑), 이광(夷曠), 청완(淸玩), 교려(巧麗) 등 16개의 평어를, 병에는 생졸(生拙), 야소(野疎), 건삽(蹇澁), 한고(寒枯), 천속(淺俗), 무잡(蕪雜), 쇠약(衰弱), 음미(淫靡) 등 8개 평어를 두었다.
최자는 시를 평하는 방법도 제시하였다. 기골(氣骨)과 의격(意格)을 먼저 하고, 사어(辭語)와 성률(聲律)을 그 다음으로 하는데, 같은 의격 가운데서도 그 운어(韻語)에 혹 낫고 못함이 있어, 한 연(聯)에 겸해서 잘 지은 자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평하는 말 또한 번잡하여 같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최자는 글[文]에 대하여 호매(豪邁) 장일(壯逸)로 기(氣)를 삼고 경준(勁峻) 청사(淸駛)로 골(骨)을 삼으며, 정직(正直) 정상(精詳)으로 의(意)를 삼고 부섬(富贍) 굉사(宏肆)로 사(辭)를 삼으며, 간고(簡古) 굴강(倔强)으로 체(體)를 삼는다고 했다. 최자는 이 ‘기·골·의·사’의 개념을 시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이규보는 시를 지을 때, ‘의(意)’와 ‘기(氣)’를 중시하여, “대저 시는 의(意)를 주로 하니 설의(設意)가 가장 어려우며 철사(綴辭)는 그 다음이다. 의(意) 또한 기(氣)를 주로 하니 기(氣)의 우열로 말미암아 곧 의(意)의 깊고 얕음이 있을 따름이다.”(『백운소설(白雲小說)』)라고 하였다.
이이는 『정언묘선』에 「원자집(元字集)」, 「형자집(亨字集)」, 「이자집(利字集)」, 「정자집(貞字集)」, 「인자집(仁字集)」, 「의자집(義字集)」, 「예자집(禮字集)」, 「지자집(智字集)」 등 여덟 집을 두고 각각 ‘충담소산(冲澹蕭散)’ ‘한미청적(閒美淸適)’ ‘청신쇄락(淸新灑落)’ ‘용의정심(用意精深)’ ‘정심의원(情深意遠)’ ‘격사청건(格詞淸健)’ ‘정공묘려(精工妙麗)’ ‘결(缺)’의 여덟 풍격을 제시하였는데, 마지막 「지자집」은 일찍 일실되어 그 풍격과 해당 한시에 대한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이이는 시의 원류가 ‘충담(冲淡)’으로부터 시작하여 거의 참모습을 잃는[失眞] 데 가깝게 된 ‘미려(美麗)’까지 시의 맥락을 제시하면서, 이를 통해 성정을 읊어 청화(淸和)를 드러냄으로써 가슴 속의 더러움[滓穢]을 씻어 존양 성찰[存省]에 일조(一助)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조회수조(雕繪繡藻) 이정탕심(移情蕩心)을 경계하고 있다(「정언묘선 서」).
『정언묘선』 각 집의 서(敍)에서 이이는 우선 각 풍격 명을 제시한 후 그 풍격을 드러내는 방법 또는 풍격의 내용과 그 구체적인 효용에 대하여 설명한 후, 그러한 풍격을 드러내는 한시를 ‘5언고시’, ‘7언고시’, ‘5언율시’, ‘7언율시’, ‘5언절구’, ‘7언절구’ 등 여섯 시체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주로 문학 작품의 미적 특질을 나타내던 풍격은 여전히 한시비평과 국문시가 등 운문과 소설 등 산문 비평에 사용되고 있고, 한 인물, 한 시대의 시의 미적 특질을 규정하는 데 사용되고 있으며, 동래학춤과 같은 무용이나 연극, 중국 졸정원(拙政園)과 같은 정원 등의 공간, 서예, 디자인 등의 미적 특질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또한 고전의 풍격 용어로 근대시의 미적 특질을 밝히는 작업도 있다.
풍격은 예술 작품의 미적 특질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에는 나름의 평가 기준이 있으나 우리 선조들이 그것을 암묵적으로 공유하였을 뿐, 기록으로 잘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 인상비평이라고 몰아붙여 그에 대한 가치를 평가절하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이가 남긴 「정언묘선 서」와 「정언묘선총서」의 기록에서 입증되듯이 고전 작품뿐만 아니라 근현대 작품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