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묘는 단동에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길가에 해당되는 마선구 서쪽 산기슭인 마선향(麻線鄕) 건강촌(建江村)의 북측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고분 가운데의 좌표는 동경 126° 7′39.99″, 북위 41° 5′44.07″이다. 고분이 자리한 곳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산지의 완만한 비탈지인데, 해발 200m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 있다. 청대 말에 이곳을 개간하던 사람들이 서대묘로 부르면서 그 명칭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1913년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세키노 다다시[關野貞], 이마니시 류[今西龍] 등이 조사하였고, 1930년대에도 만주국 문교부 위촉과 지원으로 여러 차례 재조사되었다. 1966년 길림성 박물관·집안현문물보관소가 조사하면서 서대묘를 마선구 500호묘(JMM500)로 편호하였다. 2003년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와 집안시문물보관소가 공동 으로 조사하여 청동기, 철기, 토기, 석기 등의 유물을 확인하였다.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서대묘는 도굴로 인해 심하게 파괴된 상태로 고분 중앙에 구덩이가 파여있는데, 구덩이 깊이는 7m 정도이며, 묘실은 이미 완전히 없어진 상태이다. 서대묘의 무덤형식은 고구려 적석총의 발전양상으로 볼 때 계단광실적석총으로 추정되는데, 매장부는 석실 이전의 단계인 광실로 추정되고 있다. 전체 길이는 동측과 북측의 길이가 각기 53.5m, 서측 길이 56.7m, 남측 길이 62.5m, 현존 높이 11m이다. 고분의 내부는 산자갈로 쌓았고, 외부는 다듬어 정제한 계단석을 둘러쌓았다. 서대묘의 계단은 전체가 남아 있지 않고 몇단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서대묘의 현존 계단은 대략 14단 정도가 확인되며, 그 하부의 계단은 남측의 양 모서리부가 보존이 비교적 양호하고 상부 계단은 동북 모서리가 가장 분명하다. 고분의 표면에서 깨진 기와편이 매우 많아서 묘상 건축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03년 조사에서 서대묘의 북쪽에서 녹색의 입석판이 발견되기도 하였는데, 무덤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구조적인 것으로 보기는 어려워 의례와 관련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밖에 능역에서는 고분 북측에서 배수로가 확인되었고, 북측 40.5m지점에서 길이 39m, 너비 2m의 능장도 확인되었다. 또한 동측 40m 지점과 서쪽 지점에서 장방형의 유적 제대 추정 유구도 발견되었으나, 이 제대 추정 유구의 성격은 명확하지 않다.
2003년 서대묘 정리작업 중에 토기, 청동기, 철기, 석기, 금동기 등 유물 38건이 출토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외에 고분에서는 대량의 수키와와 암키와, 기축(己丑)명 권운문 와당도 확인되었다.
서대묘는 고분이 자리한 위치와 묘장 형식이나 규모, 출토 기물 등 여러 요소에 의해 판단해 볼 때 왕릉으로 보고 있다. 대체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보이는 342년 미천왕릉의 훼손 사례나 명문 와당에 보이는 기축년이 329년으로 상정됨으로써 미천왕릉으로 비정하는 데 특별한 이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