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오회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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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오회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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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集安市)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굴식돌방무덤 · 벽화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내용 요약

집안 오회분은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굴식돌방무덤, 벽화무덤 등이 발굴된 5개의 무덤이다. 5개 무덤의 모양이 전투 때 쓰던 철로 만든 모자인 투구와 비슷하다 하여 다섯 오(五)와 투구 회(?)를 넣어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 무덤군은 서쪽부터 동쪽방향으로 1호~5호까지 있는데, 이 중에서 4호묘와 5호묘가 사신도가 그려진 벽화고분이다. 중국에서는 1호묘를 안장왕릉, 2호묘를 안원왕릉, 3호묘를 영양왕릉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5호묘는 현재 중국의 고구려 벽화고분 가운데 유일하게 개방하고 있는 무덤이다.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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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集安市)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굴식돌방무덤 · 벽화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내용

집안오회분은 우산의 남쪽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 5개의 고분모양이 투구[盔][^1]와 비슷하다 하여 오회분이라 명명되어 왔다. 고구려의 대표적 고분군인 우산하 고분군에 속하는 무덤으로 서쪽부터 동쪽 방향으로 1호부터 5호까지 5개의 무덤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중에서 4호묘와 5호묘가 사신도계 벽화고분이다. 오회분은 1909년에 처음으로 조사되었고, 1935년에도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조사되었다. 1962년에는 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문물보관소가 조사한 바 있고, 1966년에도 조사되었다. 2004년 장푸유[張福有] 등에 의해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1호묘(JYM 2101)는 기단봉토석실묘로 현재 둘레 120m, 높이 6m이다. 주2는 남향이고, 돌로 기단을 만들었으나 석재는 대부분 유실되거나 흙으로 덮혀있는 상태이다. 무덤에서는 기와편이 주로 확인되었다.

오회분 1호묘는 오회분 2·3·4·5호묘보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축조된 무덤으로 시기는 6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 학계에서는 안장왕릉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오회분 2호묘(JYM 2102)는 서쪽에서 두 번째에 위치한 고분으로 기단봉토석실묘로 현재 둘레 220m, 높이 15m이다. 오회분 가운데에서 규모는 가장 큰 고분이며 묘도는 남향이며, 무덤 주위에서 기와편이 확인되었다. 오회분 2호묘는 오회분에서는 물론 고구려의 봉토석실묘 중에 가장 큰 규모에 해당되며, 중국학계에서는 안원왕릉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무덤의 배열상황으로 보면 오회분 2호묘는 오회분 1호묘보다 늦은 시기로 추정되고, 오회분 3호묘와 4호묘보다는 빠른 것으로 추정된다. 대체적인 연대는 6세기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오회분 3호묘(JYM 2103)는 동서로 배열된 오회분 중에 중간에 위치한다. 기단봉토석실묘로 현재 둘레 130m, 묘의 높이 9m이다. 주위에서 기와편이 확인되었고, 6세기경 고분으로 중국학계에서는 피장자를 영양왕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오회분 4호묘(JYM 2104)는 일찍이 도굴을 당한 상태였으나, 1960년대에 수차례에 걸쳐 본격적인 조사가 실시된 바 있고, 1974년에 벽화가 수리되고, 보존처리 작업도 시행되었다. 한 때 주3을 개방하여 관람을 허용하였으나, 보존상의 문제로 현재는 밀폐하고 있다.

봉토석실벽화묘로 한 변 길이 30m, 높이 10m의 무덤이다. 무덤칸의 방향은 동남향이다. 묘도와 연도, 묘실로 구성된 단실분이다. 묘도는 길이 6m, 너비는 8m 이고, 연도는 길이 1.88m, 너비 1.75m, 높이 1.75m이다.

묘실은 정교하게 다듬은 커다란 화강암으로 쌓았고, 백회로 틈을 메웠다. 평면은 장방형으로, 동서 길이 4.2m, 남북 너비 3.68m, 네 벽 높이는 1.92m이다. 천정은 말각고임이고, 좌우의 두 관대는 각각 동서 양벽에 닿아 있다. 남벽의 서쪽 끝에는 동서방향으로 돌받침 한 개가 있는데, 남 · 서 두벽과 접해 있는데, 길이 1.78m, 너비 0.87m, 높이 0.2m이다.

부장품을 놓은 대좌로 추정된다. 벽화는 연도와 묘실 네 벽, 천정, 관대 등에 그려졌다. 연도에는 문지기를 그렸고, 네 벽에는 사신과 귀갑형당초문, 괴수역사상을 그렸고, 고임돌에는 교룡(蛟龍), 선인, 해와 달, 별자리, 구름무늬, 반룡문, 수목문을 그렸으며, 천정석에는 황룡과 별자리를 그렸다.

무덤에서는 금동제품, 철기, 기와편 등이 확인되었다. 오회분 4호묘 네 벽에 그려진 주제는 사신도이나, 사신도 아래에 망상화염금연화(網狀火焰錦蓮花)가 연속된 도안이 펼쳐져 있으며, 축조연대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반경의 고분으로 추정되고 있다.

5호묘(JYM 2105)는 1913년에 처음 조사된 이래 1950년대부터 2004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조사하고 보존 정비를 한 고분이다. 현재 중국 경내의 고구려 벽화고분 가운데 유일하게 개방하고 있다. 오회분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찍이 도굴되었다.

봉토석실벽화묘로 한 변 길이 25m, 높이 8m 정도로 묘도의 방향은 동남향이다. 묘도, 연도, 묘실 세부분으로 이루어진 단실분이다. 묘도는 이미 파괴되어 형태를 알 수 없고 연도의 길이는 1.93m이다.

묘실은 장방형으로 동서 길이는 4.37m, 남북 3.56m로 잘 다듬은 크고 가느다란 화강암으로 축조하였고, 백회로 틈을 메웠다. 네 벽의 높이는 2.18m이고 천정은 평행삼각고임구조이며, 높이는 3.94m이다. 묘실 안에는 돌로 만든 관대 3개가 놓여져 있는데, 동서 방향으로 배열되었다.

벽화는 평평한 석재 암면 위에 직접 그린 석벽화이다. 묘실의 네 벽 · 천정 · 관대 · 연도 좌우 양벽에 벽화가 그려졌다. 연도의 동벽과 서벽에는 문지기 역사(力士)를 그렸는데, 현재는 희미하여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연도 안쪽 입구에 튀어 나온 문미 · 문틀, 묘실 남벽과 이어진 묘실의 남쪽 가장자리의 숨겨서 만든 문미 · 문틀에는 두 방향으로 연속된 인동초 도안이 그려져 있다.

묘실의 네벽에는 사신도가 그려졌다. 묘실 네벽 모서리는 위로 치솟는 자세의 용면인신(龍面人身)의 괴수와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가리를 위로 젖힌 용이 만나면서 이루는 기둥꼴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묘실 네 벽에는 사신도 외에 연화화염망문(蓮花火焰网紋) 도안이 가득 나타나고 있다.

묘실 네 모서리에는 괴수탁용정양(怪獸托龍頂梁)이 그려졌고, 벽면과 천장사이의 고임받침에는 여러 마리의 용이 서로 물고 몸을 휘감은 형태이다. 천장 고임에는 마름모무늬, 인동당초무늬, 연꽃무늬, 하늘나무, 용을 타고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天人), 여러 별자리 등을 그렸다.

동벽에는 복희 · 여와형 해신과 달신, 북벽에는 용을 타고 승천하는 천왕과 북두칠성, 서벽에는 수레의 신, 남벽에는 신농씨 등이 등장한다. 천장석에는 북극성 등의 별자리와 함께 청룡과 백호가 뒤엉킨 모습이 그려져 있다.

관대주4에는 연환문(蓮環紋)이 그려져 있으나,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회분 5묘에서는 기와편이 수습된 바 있으며, 축조연대는 대체로 6세기말 - 7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고구려 고분 연구』(강현숙, 진인진, 2013)
『고구려 고분의 조영과 제의』(정호섭, 서경문화사, 2011)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전호태, 사계절, 2000)
『高句麗古墓壁畵硏究』(耿鐵華, 吉林大學出版社, 2008)
『集安高句麗墓葬』(孫仁杰·遲勇, 2007)
『高句麗王陵通考』(孫仁杰·遲勇, 香港亞洲出版社, 2007)
『洞溝古墳群 -1997年調査測繪報告-』(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2002)
『高句麗考古』(魏存成, 1994)
『集安縣文物志』(吉林省文物志編委會, 1984)
『通溝』(池內宏 외, 1938)
『朝鮮古蹟圖譜』1(朝鮮總督府, 1915)
「吉林集安五盔墳四號墓」(林省文物工作隊, 『考古學報』 1984-1, 1984)
「吉林輯安五盔墳四號和五號墓淸理略記」(吉林省博物館, 『考古』 1964-2, 1964)
주석
주1

예전에, 군인이 전투할 때에 적의 화살이나 칼날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쓰던 쇠로 만든 모자. 우리말샘

주2

무덤으로 통하는 길. 두 무덤 사이에 뚫어서 넋이 서로 오가게 하거나, 피라미드와 같이 큰 무덤에서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도 한다. 우리말샘

주3

시체가 안치되어 있는 무덤 속의 방. 우리말샘

주4

예전에, 무덤 안에 관을 얹어 놓던 평상이나 낮은 대. 횡혈식 석실 따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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