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우산하고분군은 집안 평지성의 북쪽에서 직선거리로 650m가량 떨어진 우산(禹山) 남쪽 기슭에서 시작하여 북동쪽으로 용산(龍山) 기슭에 이르는 북동-남서 방향의 완만한 경사면에 형성된 무덤군이다. 집안마선구고분군, 집안칠성산고분군, 집안만보정고분군, 집안산성하고분군과 함께 통구분지 무덤군을 이룬다.
고분군의 지형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으며,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다. 북동-남서 방향은 경사가 거의 없거나 완만하지만, 북서-남동 방향은 상대적으로 경사가 급한 편이다. 상대적으로 경사가 급한 우산 기슭 쪽에 고분이 밀집되어 있고 경사가 완만한 남쪽과 용산 기슭에는 고분 밀집도가 낮은 반면, 대형분이 주로 분포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덤군의 내부는 80% 이상이 남동향과 남향, 남서향을 이루고 있고, 대체로 해발 300m 이하에 집중되어 있다.
북동-남서 방향의 길이는 약 5.3㎞이고, 북서-남동 방향의 폭은 가장 넓은 지점이 약 1.8㎞이며, 면적은 대략 5.8㎢이다. 1997년 조사에 따르면, 모두 약 3,500기의 무덤이 확인되었는데, 통구분지 무덤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그중 약 1,500기는 망실되고 현재 약 2,000기만이 남아 있다. 무덤의 형식으로 구분해 보면, 약 3,500기 가운데 적석총(積石塚)이 약 1,020기, 봉토분(封土墳)이 약 280기, 동실묘(洞室墓)가 약 2,200기이다.
현재 남아 있는 약 2,000기의 고분을 크기별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약 950기가 남아 있는 적석총의 경우, 장축 7m, 13m, 18m, 25m를 기준으로, 7m 미만의 소형은 약 90기, 713m의 중소형은 약 510기, 1318m의 중대형은 약 200기, 18~25m의 대형은 약 100기, 25m 이상의 초대형은 약 50기이다.
석실봉토분의 경우 약 150기가 남아 있다. 7m 미만의 소형은 약 90기, 713m의 중소형은 약 30기, 1318m의 중대형은 약 10기, 18~25m의 대형은 약 10기, 25m 이상의 초대형은 약 10기이다. 동실묘의 경우 약 890기가 남아 있는데, 장축 10m 미만의 소형이 약 880기, 10m 이상의 대형이 약 10기이다.
통구분지의 초대형 적석총은 대체로 우산하고분군과 산성하고분군에 집중 분포하며, 대형분의 경우 무기단적석총은 우산하고분군에, 기단적석총과 계단적석총은 산성하고분군에 가장 많이 분포한다.
통구분지에서 왕릉으로 주로 비정되는 4~5세기의 초대형 적석총 9기 가운데, 5기( 장군총, 태왕릉, 임강총, 우산하2110호분, 우산하992호분)가 우산하고분군에 있으며, 석실봉토분 가운데 각저총(角抵塚), 무용총(舞踊塚), 삼실총(三室塚), 오회분(五盔墳), 통구사신총(通溝四神塚) 등의 벽화무덤이 있다.
고구려고분은 적석총-석실봉토분-동실묘의 순서로 조성되었다. 우산하고분군의 경우, 1997년에 조사된 약 1,020기의 적석총 가운데 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 후반에 주로 조성되었던 무기단적석총이 약 360기이고, 2세기5세기에 주로 조성된 기단적석총과 계단적석총이 각각 약 410기와 약 250기이다.
약 280기가 확인된 석실봉토분은 4세기 이후에 주로 조성되었고, 약 2,200기가 확인된 동실묘는 6~7세기부터 발해 시기까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동실묘의 경우, 발해 시기의 무덤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무덤의 형식과 규모, 분포 등을 고려하면, 우산하고분군은 통구분지 고분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부터 무덤이 조성되기 시작하여 고구려 후기와 발해 시기까지 묘역으로 사용되었다. 무덤군 내 지점별로 형식에 따른 분포 비율이 다르다는 점에서 미루어 보면, 지점에 따라 형성되는 시점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산 기슭의 남서쪽 완사면에 무기단적석총 위주의 고분군이 먼저 조성된 후, 그 무덤군 좌우에 기단식 혹은 계단식 적석총이 축조되고, 점차 우산하고분군의 북동쪽 끝으로 무덤군이 확장되었으며, 이후에는 군집별 적석총의 하단부에 석실봉토분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덤군 내의 빈 곳에 동실묘가 일정한 규칙성이 없이 조성되었다.